박용 뉴욕 특파원
한국 취재진과 통성명을 하던 한 북한 관계자는 “신문 경제면에 재밌는 기사가 참 많다”고 농담을 던졌다.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신봉하는 북한 관계자들이 시장경제 원칙에 철저한 한국의 경제 기사를 읽고 재미를 느낀다니…. 핵보유국을 선언했으니 이제부턴 경제에 다걸기 한다는 건가.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는 4월 핵과 경제의 ‘병진노선’을 포기하고 경제 건설에 집중한다고 결의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이를 간파한 듯 김 부위원장을 만찬에 초대해 보란 듯이 맨해튼 마천루의 스카이라인을 보여줬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모델’을 거론하며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경제 발전을 돕겠다는 ‘당근’도 제시했다. 벌써부터 북한이 원산과 마식령 일대에 카지노 등 관광상품 개발 투자를 미국에 요청했다거나 맥도널드와 같은 서방의 햄버거 체인을 평양에 허용하려고 한다는 보도도 나온다.
취재차 방문한 중국 북한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했을 때 여성 복무원이 “그만 시키시라요. 다 못 먹습네다”라고 만류했던 일도 기억난다. 매상 올리기에 급급해하지 않는 그의 태도가 정겨웠지만, 낯설었다. 북한이 시장을 개방하더라도, 때때로 비인간적인 시장 경쟁을 이해하고 부작용을 극복하는 데 꽤 시간이 걸릴 것이다.
북한이 중국식 개혁개방을 추진하려면 ‘한강의 기적’을 일군 수출 주도 산업화 정책이 불가피하다. 중국은 14억 인구의 넓은 시장을 미끼로 외국 기술과 투자를 유치했지만 북한은 무엇을 내줄 수 있을까. 개성공단처럼 정부가 관리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문을 닫는 정치적 불확실성이 도사리고 있다면 어느 기업도 북쪽 공장을 쳐다보지 않을 것이다.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진행 중이지만 미국 일각에선 북한이 제재가 풀리면 핵을 손에 틀어쥐고, 시장 개방만 하는 ‘인도식 모델’을 추구하려는 게 아닌가라는 의심도 여전하다. 북핵 리스크의 불씨가 남아 있다면 장기 투자가 필요한 북한 인프라에 돈을 댈 투자자는 많지 않다. ‘대동강의 기적’을 위해선 비핵화 이행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다.
북한이 못사는 건 미국과 국제사회의 제재 때문만이 아니다. 한국이 미국과 동맹국의 투자와 지원만으로 경제를 일으켰다고 믿는 것도 순진한 발상이다. 갇혀 있는 새는 새장을 키워줘도 훨훨 날지 않는다. 한강의 기적이 지속됐던 건 기업과 시장이라는 새에게 자유를 주고, 국민의 저축과 투자, 혁신을 보상해주는 경제 시스템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대동강의 기적도 그렇게 올 것이다. 북한은 각오가 다 돼 있을까.
박용 뉴욕 특파원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