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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전성철]고위 공직자 인사검증, 정보 경찰 ‘부업’일 순 없다

입력 | 2018-06-06 03:00:00


전성철 사회부 차장

“전 기자. A 검사 좀 알아요?”

가끔 경찰 정보관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는다. 검찰 인사 시즌이 다가왔다는 신호다. 경찰 정보관이 세평을 물어보는 검사들은 검사장 승진 대상이 된 이들이다. 국가정보원의 국내 정보 파트가 폐지돼 경찰이 유일한 인사 검증 창구가 된 후로는 경찰 정보관들에게 질문을 받는 횟수가 더 늘었다.

고위 공직자 인사를 하면서 다양한 창구를 통해 여론을 수렴하는 일은 필요하다. 큰 조직을 지휘하면서 중요한 결정을 할 사람을 뽑는 일이니 주변 사람들의 평가를 듣고 참고하는 건 당연하다.

다만 그런 일을 정보 경찰이 담당하는 것이 옳은가는 고민해 봐야 한다. 정보 경찰은 수사 경찰과 한 울타리 안에서 근무하지만 근본적으로 정보기관이다. 정보기관의 활동은 원칙적으로 공개되지 않는다. 따라서 인사 검증 대상자는 누군가가 자신에 대해 악감정을 품고 악의적인 이야기를 해도 제대로 된 반박 기회를 얻을 수 없다. 수십 년씩 성실하게 일한 공직자의 승진 여부가 누군가의 사심 섞인 돌팔매질로 망가질 수 있다는 건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그런 흠결이 존재할 수 있는 자료라면 참고조차 하지 않는 게 옳다.

정보 경찰이 청와대를 바라보며 보고서를 쓰는 조직이라는 점도 문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공소사실에는 경찰청이 ‘현안 참고자료’라며 올린 보고서 제목이 여럿 등장한다. ‘촛불시위 직권조사 과정에서 경찰청장에 대한 경고를 권고한 국가인권위 인적쇄신 필요’ ‘직선 교육감 취임 1주년 관련, 좌파 교육감들의 이념편향 행보 견제 방안 제시’ ‘2011 서울시장 보궐선거 관련 여당 승리 위한 대책 제시’ 같은 것들이다. 정보 경찰의 보고서에서 청와대와 여당의 유불리는 모든 현안에 적용되는 우선적 기준이다.

경찰 정보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인사 검증에서도 정권과 가까운 ‘어차피 승진할’ 인사들은 상대적으로 검증을 느슨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오랜 기간 정치 외풍에 휘둘려온 정보 경찰의 생리다.

정권이 바뀌었으니 이제는 달라졌을까. 그렇지 않다. 여전히 정보 경찰은 검찰 고위 간부를 포함한 고위 공직자 인사 검증에서 ‘대통령의 국정운영 철학을 뒷받침할 수 있는 사람인가’를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 그런 기준은 청와대 참모나 정무직 장관을 고를 때에는 합리적인 잣대일 수 있다. 하지만 공명정대한 법 집행을 담당해야 할, 때로는 정권을 향해 칼을 겨눠야 할 검찰 고위 간부를 그런 식으로 골라서는 곤란하다.

정보 경찰이 청와대가 인사권을 행사하는 다양한 영역의 인사 검증을 감당할 충분한 역량이 있는가 하는 점도 문제다. 검찰처럼 폐쇄적인 조직에서는 경찰 정보관이 고위 간부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기본적인 정보를 접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경찰 보고서에 포함된 세평은 동료 검사들의 평가보다는 법조 출입기자나 검찰 수사관들의 이야기로 채워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아마 검찰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비슷한 상황인 곳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래서는 좋은 인사 자료가 나오기 어렵다.

고위 공직자 인사 검증에서 정확한 여론을 청취하려면 어느 기관이 그 일을 담당할지부터 정해야 한다. 인사 검증은 정보 경찰이 ‘사이드 잡’으로 하기에는 너무 크고 중요한 일이다. 인사 검증 주체를 정하면서 절차나 기준도 명확하게 법률로 정해야 한다. 그래야 정권이 바뀌어도 불법 사찰 논란 같은 불필요한 시비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다.
 
전성철 사회부 차장 daw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