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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정용준 “깊고 강렬한 문학의 맛, SNS는 절대 못 따라와”

입력 | 2018-06-06 03:00:00

[21세기 청년 작가들]<8> 탄탄한 문장력 정용준 작가




정용준 소설가는 “문학적 이야기는 홍수처럼 넘치는 시대다. 그렇지만 문장 단위로 흘러 다니는 SNS로는 문학적 감수성을 취득할 수 없다. 결국 서사의 강렬한 충족감은 문학이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군대에서 시간을 보낼 방편이라곤 독서밖에 없었다. 책꽂이에 꽂힌 소설을 한 권 한 권 읽어갔다. 억지로 읽는다고 생각했던 책들이 어느 밤부터인가 자꾸 떠오르기 시작했다. 종일 여럿이 함께하는 시간이었지만 누구도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한다는 마음에 지칠 무렵이었다. 그가 읽은 소설 속 사람들은, 그 소설을 지은 작가는, 그런 그를 내밀하게 알아주는 것 같았다. 소설가 정용준 씨(37)는 “문학이 인간에게 다가오는 방식을 그렇게 겪었다”고 했다.


러시아어과 학생이었던 정 씨는 제대하자마자 문예창작과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기형도가 섬 이름인 줄로만 알았던 그였다. 문창과 수업 때 교수가 말하는 작가 이름을 줄줄이 적어선 도서관에 가서 책을 쌓아놓고 읽었다. A+ 학점을 받은 수업도 다시 듣고 싶어 재수강했다. 그는 그렇게 글쓰기 훈련의 시간을 보냈다.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어떤 소설가는 배워서 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처럼”이라면서 정 씨는 웃음 지었다.

정 씨는 “한국문학사를 통틀어 만나기 쉽지 않은 아름다운 죽음의 문장들”(평론가 김형중)이라는 평을 받는 작가다. 최근 낸 새 장편 ‘프롬 토니오’에서는 연인이 실종된 뒤 상실감을 겪는 주인공 시몬이 고래 배 속에서 나온 토니오에게서 연인의 메시지를 들으면서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담았다. 이 토니오는 실은 비행 중 실종된 ‘어린 왕자’의 작가 생텍쥐페리라는 설정이 더해졌다.

“생텍쥐페리의 소설 ‘야간비행’을 좋아합니다. 밤에 홀로 비행하는 조종사의 심정이 밤에 글 쓸 때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고독하고 무섭고…아름다운 심정요.”

그러나 “21세기는 작가의 고독이 허용되지 않는 시대”라고 말할 때 정 씨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발달하면서 끊임없는 피드백에 시달려야 하고 주변을 늘 의식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소통’이란 말이 싫다고 했다. “소통이란 실제론 난해하고도 기이한 감각인데 그걸 ‘추천’ ‘팔로’와 같은 뜻으로 쓰더라”는 것이다.

“SNS는 인터넷 카페 같은 입체적 매체로 시작됐지만 블로그에 이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선이나 점 같은 미디어로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텍스트가 점점 없어지면서 인스타그램의 사진, 코드(해시태그) 등으로 자신을 증명하고 있죠.”

정 씨는 결국 SNS의 끝은 고립 그리고 탈퇴라고 생각한다며 그 끝에서 ‘읽기’의 경험이 힘을 발할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독서란 시간을 들이는 적극적 읽기의 수고를 감내해야 하지만, 속도의 시대인 21세기에 이 경험이 널리 파급되기란 쉽지 않다. 그는 “그렇지만 그 노력을 통해 책 한 권을 ‘통과’했을 때 느끼는 만족감은 어느 것보다 강하다는 걸 확신한다”고 했다. 이렇게 깊고 강렬한 문학적 자극을 만들어내는 작가, 그리고 그것을 읽는 독자가 있는 한 “이 세대는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정 씨는 말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