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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최재경]정치가 만든 분쟁이 서초동으로 몰리는 현실

입력 | 2018-06-08 03:00:00

北-美회담·지방선거 앞 대한민국
법원 논란부터 드루킹 특검까지… 갈등 상당부분 정치권서 비롯돼
갈등은 타협·양보의 자율로 풀고, 어려우면 조정·절충 정치력 필요
사법은 마지막 나설 때 효과적




최재경 객원논설위원·법무연수원 석좌교수

6월 12일이 나흘 앞으로 다가왔다. 우리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날이다.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북-미 정상회담은 북한의 비핵화를 통한 평화 정착 문제를 순조롭게 풀어가기 위해 꼭 거쳐야 할 중요 관문이다. 남북은 물론이고 미국과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세계 각국의 관심과 수읽기가 여기에 집중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내부 사정은 조금 복잡하다. 새 정부 출범 이후 1년 만에 치러지는 6·13지방선거를 앞두고 여야 간에 치열한 선거전이 전개되고 있고, 선거 이후의 정국 변화는 한 치 앞을 예측하기 어렵다.

서초동의 법조 주변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법원행정처 문건 문제 처리를 두고 고위법관과 소장법관 사이의 이견이 뚜렷해졌다. 법원 내부의 논란은 ‘법란 사태’ 운운할 정도로 분분하지만 결론은 정해진 것처럼 보인다. 소추기관인 검찰이 심판기관인 법원의 내부 문제를 수사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기소까지 검토해야 할 사법 사상 초유의 사태가 임박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어제 특별검사가 임명되면서 특검의 드루킹 사건 수사도 시작됐다. 대한항공 등 각종 기업의 일탈과 비리, 지방선거에서 파생된 각종 선거사범에 대한 검찰의 수사도 강도 높게 진행될 것이다.

법원에서는 박근혜·이명박 전직 대통령과 전 정부 고위인사들에 대한 형사재판 절차가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다. 지켜보는 국민의 시각은 다양하겠지만 한결같이 걱정스러울 것이다. 민족의 명운이 걸린 남북관계가 시시각각 급변하고 있어 앞으로의 전략을 고민하고 대비하기도 바쁜 시기 아닌가.

이런 상황이 초래된 데에는 정치권의 책임이 작지 않다. 제반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하며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정치권 본연의 소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분쟁은 상당 부분 정치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드루킹 사건은 말할 나위도 없고, 법원 문건 문제 역시 본질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부가 역점 사업으로 상고법원 설치 입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생긴 문제다.

우리 헌법은 국회에 국정감사와 국정조사권, 각종 상임위원회의 심의권, 고위공직자와 법관 등에 대한 탄핵소추권을 부여하고 있다. 국회가 이런 권한을 잘 사용해서 국정 견제·감시 기능을 충실하게 수행했다면 이런 문제는 아예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현안을 예방하고 풀어야 할 정치권이 오히려 골치 아픈 분쟁을 만든 뒤 그 해결은 형사사법 절차에 떠넘기는 관행이 바뀌지 않고 있다. 사법 절차를 통한 분쟁 해결은 두부 모 베듯 일도양단 식으로 이루어진다. 분명하게 승패를 가린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분쟁이 최종적으로 해결되지 않고 사회가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사는 간단하지 않다. 모든 일에 흑백이 분명한 것도 아니다. 어느 정도는 애매한 측면이 있기 마련이다. 모든 분쟁이 사법적으로 해결된다면 갈등의 완전 해소는 기대하기 어렵다. 패배한 쪽이 승복하지 않을 경우 불복 차원의 집단행동 등 후유증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헌법은 삼권분립의 원칙을 선언하고 있다. 분쟁이 생겼을 경우 해당 분야에서 타협과 양보를 통해 자율적으로 푸는 것이 가장 좋다. 그것이 어려우면 조정과 절충을 통한 정치적 해결을 검토해야 한다. 사법은 맨 마지막에 나설 때 가장 효과적이다.

6월 12일 북-미 회담과 13일 지방선거는 국력 결집을 위해 소중한 기회가 될 수 있다. 선거를 통해 정치적 승패는 분명하게 갈릴 것이다. 모두 결과에 승복하고, 앞으로 대한민국을 어떻게 이끌어나갈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

국회 진용이 새롭게 구성되면 각종 현안 해결에 정치권이 적극 나서기 바란다. 국정조사와 법사위 등의 상임위 활동을 재개하여 객관적 실체를 규명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강구함으로써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안 그래도 바쁜 대한민국 서초동의 판검사들이 이번 여름에는 가족들과 모처럼의 휴가를 즐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시간외수당이나 주 52시간 근무는 해당 없는 처지지만, 사법 절차에서 국민 전체에 봉사하는 사람들에게도 최소한의 ‘워라밸’은 필요하니까.
 
최재경 객원논설위원·법무연수원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