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행정권 남용’ 해법 진통
반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조사를 주도해온 민중기 서울중앙지법원장은 이번 사건의 해결을 국회에 맡겨야 한다는 뜻을 내비치며 ‘엇박자’를 냈다. 대법원이 직접 형사 조치를 취하는 데 대해서는 부정적인 뜻을 보이면서도 해결 방식에 대해서는 정반대의 해법을 내놓은 것이다.
○ 김명수 ‘내부 해결’ vs 민중기 ‘국회가 나서야’
이 같은 발언은 전날 전국 법원장 간담회 참석자들이 “법원행정처 관계자들의 행위는 직권남용죄로 처벌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낸 것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고참 법관들의 일치된 의견을 무릅쓰고 형사 조치를 강행하는 일은 김 대법원장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반면 전국 최대 법원인 서울중앙지법의 수장인 민 원장은 이날 출입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번 의혹을 검찰이 아닌 또 다른 외부기관인 국회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법원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자들에게 취할 수 있는 징계의 최고 수위가 정직에 불과하므로 국회에 이번 사건을 넘겨 탄핵을 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날 오후 민 원장은 자신의 발언이 김 대법원장과 충돌하는 것처럼 비치자 “제가 조금 경솔한 면도 있는데 (보도 자제를) 부탁드린다”며 수습에 나섰다.
김 대법원장과 민 원장이 형사 조치에 대해 부정적인 뜻을 내비친 것은 형사 조치에 부정적인 일선 법관들의 분위기와도 맞닿아 있다. 본보가 입수한 서울중앙지법 판사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171명 가운데 ‘대법원이 검찰 고발 또는 수사 의뢰를 해야 한다’는 답변은 전체 응답자의 15.2%인 26명에 불과했다. ‘이번 사태에 대해 철저한 수사 촉구를 해야 한다’는 응답자도 35.7%(61명)에 그쳤다. 서울중앙지법 전체 판사 320여 명 중 절반 이상이 참여한 이번 조사 결과를 감안하면 11일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도 형사 조치 찬성 의결이 이루어지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현직 판사들은 사법행정권 남용에 대한 의견을 연달아 밝혔다. 정원 의정부지법 부장판사는 전국법관대표들에게 “(18세기) 프랑스 혁명 당시 혁명세력은 ‘억울하게 갇힌 정치범들을 풀어주자’는 거짓 선동으로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한 뒤 거기서 확보한 무기로 루이 16세와 귀족들을 단두대 위에 세웠다. 당시 마리 앙투아네트가 무슨 죄를 지어 죽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일부 법관들이 ‘재판 거래’ 의혹을 사실인 것처럼 부풀리는 것을 비판한 것이다. 반면 송경근 전주지법 군산지원장은 법원 내부 전산망 코트넷에 올린 글에서 “뼈가 부러지고 살이 찢어지더라도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형사 조치를 반대하는 고위 법관들의 회의 결과를 비판했다.
이호재 hoho@donga.com·김윤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