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시민들이 수도 카이로의 아타바역에서 지하철에 몸을 싣고 있다. 이집트 언론 이집트투데이 홈페이지
박민우 카이로 특파원
생각만 해도 끔찍하고, 한국에서 상상조차 하기 힘든 시나리오가 이집트에서는 현실이 됐다. 이집트 정부는 지난해 3월 1이집트파운드(약 60원)인 카이로 지하철 운임을 두 배로 올렸다. 기존 운임이 워낙 저렴했기 때문에 충격은 생각보다 덜했다. 하지만 지난달 11일 지하철 요금이 또 오르자 시민들은 충격을 넘어 분노했다.
이집트 정부는 기본 운임을 3이집트파운드로 올리고, 구간별 차등요금제를 처음 도입해 최고 요금을 7이집트파운드로 정했다. 사실상 운임이 3배 이상으로 오른 셈이다. 50대 직장인 무함마드 가와드 씨는 “월 소득의 3분의 1을 교통비로 쓰게 생겼다”며 “이번 지하철 운임 인상은 받아들일 수도, 감당할 수도 없다”고 울분을 토했다. 사망한 남편의 연금 월 1500이집트파운드로 생활하고 있다는 사미라 씨도 “최근 몇 년 새 생활비 부담이 두 배로 늘었다”며 “지하철에 크게 의존하는 저소득층에 너무 가혹하다”고 말했다.
이집트 시민들은 최근 몇 년 새 급격한 물가 상승으로 고통받고 있다. 이집트 최초의 민선 대통령 무함마드 무르시는 배고픔을 해결해달라는 대중의 요구를 해결하지 못하고 2013년 7월 군부 쿠데타로 물러났다. 그 후 정권을 잡은 압둘팟타흐 시시 대통령은 혼란을 안정시키고 경제를 개선시킬 것을 약속했지만 현실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이집트 정부는 2016년 11월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120억 달러(약 12조9000억 원) 규모의 구제금융을 받기로 하면서 강도 높은 경제 개혁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외환보유액을 늘리기 위해 화폐 가치를 절하하고 방만했던 보조금을 삭감하자 식료품과 생필품, 공공요금이 줄줄이 올랐다. 이집트중앙은행에 따르면 이집트의 물가상승률은 지난해 7월 33%에 육박했다.
시시 대통령이 올해 3월 말 대선을 앞두고 민심 잡기용 ‘물가 잡기’에 나서면서 물가상승률은 한때 13% 수준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대선이 끝나자 이집트 정부는 지난달 지하철 운임 인상에 이어 이달엔 상·하수도 요금을 50% 인상했다. 다음 달에는 연료와 전기요금이 각각 60%, 55% 오를 예정이다. 이집트 시민들의 생활은 더욱 팍팍해질 수밖에 없다.
재선에 성공해 이달 2일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시시 대통령은 성난 민심을 수습할 수 있을까. 시시 대통령은 97%의 득표율로 당선했지만 투표율은 41%에 그쳤다. 민생고가 커질수록 시시 정부에 대한 압력은 커질 수밖에 없다.
2011년 ‘아랍의 봄’을 촉발한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소득층과 중산층의 경제적 불만이 커졌기 때문이다. 권위주의로 정치적 자유를 억누를 수는 있다. 그러나 “빵을 달라”는 경제적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그 정권은 결국 무너지게 돼 있다.
박민우 카이로 특파원 minw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