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차량공유 1위 기업 르포
싱가포르에 위치한 모빌리티(이동수단) 서비스 기업 ‘그랩’ 본사 앞에서 음식 배달 서비스인 ‘그랩푸드’ 배달 기사와 주문자가 스마트폰으로 그랩의 애플리케이션(앱)을 확인하고 있다. 그랩푸드는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베트남 등 5개국에서 서비스되고 있다. 그랩 제공
도로에서는 그랩 로고를 붙인 녹색 자동차가 손님을 태우는 장면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번화가의 식당과 카페에는 ‘Grab Pay(그랩페이)’라는 문구가 상단에 적힌 QR코드가 벽에 붙어 있다. 이 표시가 있는 가게에서는 그랩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해 모바일 결제가 가능하다. 현지 식당가 ‘뉴턴 호커 센터’에서도 그랩페이 표시가 식당 벽마다 붙어있었다. 뉴턴 호커 센터는 푸드트럭과 비슷한 100여 개의 식당이 모여 있는 곳으로, 그랩페이 도입 전까지는 신용카드 결제가 불가능했다.
2012년 말레이시아에서 차량 호출 앱으로 시작한 그랩이 동남아시아인들의 삶을 바꾸고 있다. 그랩은 차량 공유 서비스를 넘어 금융, 결제, 주문, 배달 등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는 온라인 통합 O2O(온·오프라인 연계) 플랫폼으로 진화했다. 온라인 결제가 가능한 ‘그랩페이’를 비롯해 음식을 배달해 주는 ‘그랩푸드’, 자전거를 대여하는 ‘그랩사이클’ 등으로 사업을 확대했다. “온라인 결제가 필요한 일상생활의 모든 영역에 들어가는 서비스가 되겠다”는 회사의 비전이 현실화되고 있었다.
그랩은 3월 말 우버의 동남아시아 사업권을 인수하면서 동남아시아에서는 확고한 1위 업체가 됐다. 2012년 ‘동남아시아판 우버’를 만들자는 목표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40명의 운전자로 서비스를 시작한 지 불과 6년 만이다. 그랩 공동창업자인 후이링 탄 최고운영책임자(COO)는 “비결은 현지화”라고 강조했다.
동남아의 열악한 교통 인프라를 감안해 혼잡한 도로에서 이동이 편한 오토바이를 잡아 탈 수 있는 ‘그랩바이크’를 추가했다. 캄보디아에서는 툭툭(인력거의 일종) 같은 지역 특화 교통수단으로 확대했다. 다양한 교통수단을 혼합해 최단시간에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도 준비 중이다.
운전자, 제휴 식당, 가게 등 파트너들과 상생 생태계를 조성한 것도 지역 사람들의 신뢰를 얻는 기반이 됐다. 그랩은 사고 시 운전자에게 보험 비용을 지불해주고, 그랩 운전자들에게 소액 융자를 제공하는 ‘그랩 파이낸셜’을 시작했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운전자에게 최적화된 경로로 그랩 호출을 배분해 주기 때문에 운전자가 효율적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SK는 그랩과 손잡으며 동남아시아 모빌리티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SK는 국내를 포함해 미국, 중국, 동남아 등 4대 핵심시장을 선정하고 지역별 차량 공유 선도 사업자를 대상으로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동남아시아 시장에서는 차량 공유 분야 독보적 1위인 그랩에 투자했다. SK㈜는 그랩이 추진한 20억 달러(약 2조1250억 원) 규모의 투자 유치에 재무적 투자자(FI)로 참여해 3월 약 810억 원(지분 1.34%)을 투자했다. 2015년에는 국내 1위 차량 공유 업체 쏘카에 투자했다. 지난해 5월에는 쏘카와 말레이시아 합작법인을 설립하고 올해 1월부터 서비스를 시작했다.
싱가포르=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