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2시간 가이드라인 발표]혼란 여전… 고민 깊어지는 기업들
주요 기업 인사팀 관계자들은 법 시행 20여 일을 앞둔 11일에야 발표된 근로시간 단축 가이드라인을 보고 여전히 고개를 갸웃했다. 내용은 이미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고민하고 검토한 사례들로 해석이 애매한 부분이 적지 않고, 기대했던 업종별 특수 상황은 반영이 안 돼 있다는 얘기였다. 일부 쟁점은 추후 노사 갈등의 불씨를 남겼다는 지적도 나왔다.
○ 알아서 판단하라는 가이드라인
쟁점으로 떠오른 ‘업무상 접대’도 혼란스럽다는 의견이 많았다. 기업 관계자는 “상사의 지시 또는 승인 없는 접대는 근로시간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걸로 보인다. 개인적인 접대 약속이 많은 영업직군의 불만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대기업 인사팀 관계자는 “가이드북에는 휴일에 골프 라운딩 접대하는 사례만 나와 있는데 그 이후의 식사 문제 등에 대해선 언급이 없다”고 지적했다. 상사의 뚜렷한 지시는 없었지만 법인카드로 접대 식사비를 결제하면 사실상 ‘최소한의 승인’에 해당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 식품기업 관계자는 “직원 중 하나가 강하게 문제 제기하면 법으로 다툴 가능성이 생긴 셈”이라고 말했다.
출장시간 계산도 논란이다. 해외출장은 비행시간이나 출입국 수속시간, 이동시간 등 필요한 시간을 근로자 대표와 서면 합의를 통해 정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게 가이드라인의 제언이다. 대기업 관계자는 “비행기가 연착되는 경우, 비행기를 경유해서 가는 경우 등 일일이 기업들이 노사 합의를 거쳐야 하나”라고 했다.
지방으로 이전한 공공기관은 더욱 혼란스럽다는 반응이다. 서울 출장과 접대, 회식이 한꺼번에 이뤄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A공공기관 고위 관계자는 “민간 기업과 달리 공공기관은 이 가이드라인을 무조건 지켜야 감사 지적을 피할 수 있어 더욱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 기업 희망사항엔 묵묵부답
기업들의 가장 큰 불만은 정작 꾸준히 요구했던 문제에 대한 답은 없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것이 탄력적 시간 근로제 개선 방안이다. 재계는 근무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도록 단위기간을 현재 3개월에서 1년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현재는 3개월까지만 가능하다.
업종별 특수상황 발생 시 대응 방안도 나와 있지 않았다. 직원 800명 규모의 석유화학기업 A사는 주기적으로 대규모 화재나 폭발 사고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작업을 한다. 이 작업은 일단 시작되면 24시간 멈출 수 없다. A기업 관계자는 “안전 문제 같은 특수상황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24시간 서비스해야 하는 게임업계나 대기시간이 긴 방송이나 영화제작 업계도 근로시간 계산에 애를 먹고 있다.
상대적으로 짧은 공사 기간과 기술력 등으로 우위를 선점했던 해외 건설현장은 상황이 보다 심각하다. B건설사 관계자는 “근무시간 단축에 따른 비용 증가로 해외 현장에서의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면서 “안 그래도 중동지역 리스크가 커지면서 수주가 줄고 있는데 근무시간 단축이 시장을 위축시키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했다.
당장 아이스크림 성수기를 앞둔 식품업계는 추가 채용에 나섰지만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 빙과업계 관계자는 “6∼8월 3개월 극성수기에는 2교대로 생산을 하는데 이 경우 주당 52시간을 초과해서 일하기 때문에 현재 10%가량을 추가 채용 중”이라며 “얼마나 인원이 더 필요한지 제대로 산출하기 어려워 막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