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김재호 과학평론가·재능대 특임교수
어린이들은 4세가 돼서야 1보다 작은 0의 양적 개념을 이해한다. 아이들은 부모가 이따금 존재하지 않는 상황을 인식하면서부터 혼자라는 걸 깨닫고, 먹을 게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치면서 ‘부재’ 혹은 ‘무’의 의미를 이해한다. 내가 가진 게 없다는 걸 뼈저리게 아는 순간 실존은 꿈틀댄다. 은행 잔액이 없으면 사람은 더 열심히 일을 한다.
최근 국제 과학 학술지 사이언스는 꿀벌이 0을 이해한다는 실험 결과를 소개했다. ‘없음’을 아는 게 영장류만의 특징은 아니라는 뜻이다. 원숭이와 앵무새뿐만 아니라 꿀벌들도 0을 이해할 수 있다. 다시 말해, 0을 이해하는 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넓게 멀리 퍼져 있고 독립적으로 진화해왔다.
숫자에 대한 개념은 생존과 번식을 위한 수단이다. 동물이나 곤충의 고급 수치 능력은 동물에게 진화론적 우위를 제공해 포식자와 음식물 출처를 추적하도록 돕는다. 벌은 숫자를 이해하는 능력이 출중하다. 꿀벌은 보통 4까지 인식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말벌의 변종인 ‘게누스 에우메누스’의 어미는 수컷 알에는 먹이로 나비 애벌레 5마리를, 암컷 알에는 나비 애벌레 10마리를 정확하게 넣어준다. 암컷이 훨씬 크기와 몸집에 알맞은 영양분을 효율적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0은 부재의 현존성을 나타내는 기호이다. 존재하지 않지만 그 존재하지 않음을 드러내야 하는 것이다. 또한 0은 양수와 음수의 기준점이기도 하다. 따라서 0을 이해하려면 상상력을 동원해야 한다. 0은 7세기 인도에서 발명되고, 9세기경 한 사원에 기록된다. 그 후 0은 인류 문명의 발전을 도모하며 퍼져갔다. 인도의 상인들은 모래에 돌로 셈을 하다가, 돌이 남긴 자국을 보고 0을 발견했다. 그런데 일부 동물과 곤충이 0을 인지한다는 건 진화의 토대가 충분하다는 뜻이다. 즉 상상력은 인류만의 능력이 아니다.
신체로 0을 나타낼 순 없다. 0은 소수(素數)나 합성수가 아니고, 분수와 소수(小數)라고 하기엔 어색하다. 특히 0은 나눗셈이 불가능하다. 대개 나눗셈은 역수를 곱하는 것으로 이해되는데, 0으로 나눈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0으로 나누려면 무한의 개념을 알아야 한다. 0에 가까운 극히 작은 수로 나눈다는 건 그 숫자들로 쪼갠다는 뜻이다. 혹은 그 역수인 무한히 큰 수를 곱한다는 의미이다. 예를 들어, 1÷1억분의 1=1억이 된다. 1을 1억분의 1로 쪼개면 1억 개가 된다. 무한의 개념이 0과 맞닿아 있는 것이다. 0을 알아야 수열과 미적분, 급수를 이해할 수 있다. 각각은 도형으로 그 개념이 확장된다.
0은 지수(로그)에서도 확인된다. 2의 0제곱은 1이라고 배우는데 이 개념을 제대로 알아차리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모든 수의 0제곱은 1이라고 외우기도 한다. 지수함수를 그려보았을 때 x가 0으로 다가가면 y값은 1로 수렴한다. 혹자는 거듭제곱에 처음 곱해지는 기준점으로서 1이 존재한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모든 수의 0제곱이 1이라는 건 여전히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과연 없음은 존재하는 것일까?
0이 없으면 우주의 탄생이나 양자역학의 세계, 프로그래밍이 존재할 수 없다. 기호(기록)의 한계에 부딪혔을 때 인류는 0을 만들었다. 0은 처음에 점(·)으로 표기됐다. 점(·)은 길이도, 넓이도, 부피도 없다. 없음을 기록해야만 있음이 가능하다.
김재호 과학평론가·재능대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