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악수’ 김정은-트럼프… 신스틸러에 가려진 지방선거 확증편향과 무관심, 위험한 결합 권력 맡길 지역일꾼 가려내는 것, 공동체 구성원의 막중한 책무다
고미석 논설위원
‘단순한 참여자가 되지 마라. 자신의 자리를 위해 싸워라. 더 좋은 것은 최고의 자리에 서기 위해 적극 싸우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켄터키주 벨카운티 고교의 졸업생이 이 말을 인용한 순간 환호가 터졌다. 역대 선거마다 공화당 텃밭 지역인지라 ‘트럼프’의 이름만 듣고도 청중이 열광한 것. 한데 덧붙인 한마디에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농담입니다. 그건 버락 오바마의 말이었습니다.” 실은 2012년 당시 오바마 대통령이 바너드 여대에서 했던 축사 중 한 대목이었다. 똑같은 말도 내 편 네 편에 따라 박수 혹은 야유로 엇갈리는 세상의 편견에 예비대학생이 따끔한 일침을 날린 셈이다.
믿고 싶은 것만 흔쾌히 믿고, 보고 싶은 대로 선택적으로 보는 것을 확증편향이라 한다. 명명백백한 사실을 들이대도 자신이 신봉하는 믿음과 배치되면 거부반응을 보이는 인지적 편향이다. 내 생각과 다르면 그게 뭐든 ‘안 보고 안 듣고 안 믿을란다’는 식이다. 그런 점에서 빌 게이츠가 올해 대학 졸업생을 위한 선물로 나눠주는 전자책은 제목부터 의미심장하다. 스웨덴 통계학자 한스 로슬링 등이 쓴 책 제목은 ‘팩트풀니스(factfulness)’.
영어 원제는 이들이 만든 신조어로서, 현실의 팩트(fact)가 뒷받침된 의견을 견지하는 습관을 뜻한다. 저자는 사실과 주장을 혼동하는 것을 사회 갈등과 스트레스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이 책은 세계가 우리 생각보다 더 빠르게 좋아지고 있음을 통계로 증명하면서 막연한 편견을 이기는 ‘사실’의 무게를 일깨운다. 빌 게이츠가 사회로 진출하는 청춘에게 이 책을 선물한 이유는? 아마도 ‘세상은 나아지고 있다’는 긍정의 시각을 심어주는 동시에 자기 신념이 사실과 부합하는지 돌아보라는 충고도 담겨 있을 터다.
결국 역사의 수레바퀴가 어느 쪽을 향하고 있는지 판단하는 것은 눈 밝은 국민의 몫이다. 본질을 놓치지 않으려면 더도 덜도 말고 사실에 기초한 평가가 필요하다. 더불어 오늘 치르는 지방선거에서도 유권자의 역할이 막중하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비슷한 성향의 의견을 확대재생산하는 온상이 되면서, 주변에 휩쓸리지 말고 주체적 판단을 하라는 것은 ‘공자님 말씀’ 격이 됐다. 하필 ‘세기의 악수’ 뒷날이 투표일이라 김정은과 트럼프, 두 명의 신스틸러가 지방선거를 가려버렸다. 역사적 이벤트와 만나 대진운도 억세게 불리하고 한쪽의 일방 우세가 점쳐진 상황이라서 ‘이래 불참’ ‘저래 기권’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최근 나온 책 ‘선한 권력의 탄생’은 ‘타인의 상태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능력’으로 권력을 재정의한다. 사회 구성원은 권력을 받을 자격이 있는 일꾼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진다. 지역 내 상전이 아니라 공동체에 기여할 만한 ‘선한 권력’을 창출하는 일에 무관심해선 안 될 이유다. 표면상 같은 목가구로 보여도 소재가 원목, 집성목, 골판지 등 제각각이듯 확증편향에 스스로가 기만당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겠다.
갑도 한 표, 을도 한 표. 선거는 한국 사회가 그토록 목말라하는 사회적 평등과 정의의 실현 기회다. 민주적 투표는 기본에 동의하는 사람들 사이에 의견 불일치를 해결하는 방법이라고 유발 하라리는 말했다. 눈에 차는 후보가 없어도 의사표시는 해야 한다. 최악은 걸러내야 하므로. 그래서 반드시 투표장으로 가야 한다. 바로 오늘!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