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핵합의 탈퇴’ 거센 후폭풍
미국의 핵합의 파기로 인한 후폭풍이 가장 거센 곳은 이란 영공이다. 보잉은 6일 “우리는 이란에 어떤 항공기도 수출하지 않았으며, 현재로서는 이란에 대한 수출 면허도 없어 앞으로도 이란에 대한 수출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보잉 등 미국 회사가 이란과 거래하기 위해서는 미 재무부 산하 해외자산통제국(OFAC)으로부터 판매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지난달 10일 미국이 핵합의에서 전격 탈퇴를 선언하면서 항공기 수출길이 완전히 막혀 버린 것이다.
이에 따라 평균 기령 27년으로 세계에서 가장 노후한 이란 항공기는 당분간 위태로운 비행을 이어가야 할 처지에 놓였다. 이란에서는 올해 2월 아세만항공 소속 ATR72-212기가 이륙 50분 만에 자그로스 산맥에 추락해 탑승 인원 65명이 모두 사망하는 등 2000년 이후 최소 23건의 항공사고가 발생해 최소 1170명이 목숨을 잃었다.
프랑스의 토탈 등 이란에 대규모로 투자했던 유럽 에너지 기업들도 큰 손실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토탈은 지난해 7월 이란국영석유회사(NIOC), 중국석유천연가스집단공사(CNCP)와 함께 이란 사우스파스 해상가스전 개발을 위한 48억 달러(약 5조2000억 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미국의 제재를 피하지 못할 경우 사업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주요국은 최근 미국의 대이란 경제제재와 관련해 자국의 에너지, 항공 업체들에 대한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 제재)을 면제해 달라고 미국 정부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건설사들이 수주한 수조 원의 계약도 줄줄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대림산업은 지난해 3월 이란과 맺은 2조2000억 원 규모의 정유공장 개선사업 공사 수주 계약을 해지했다고 1일 공시했다. 대이란 금융제재로 계약 발표 전제 조건인 금융약정 체결 기한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대엔지니어링, 현대건설, SK건설 등도 사업 진행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지 못하고 있다.
이란은 단단히 뿔이 났다. 유럽연합(EU)이 핵합의를 살릴 해법을 좀처럼 제시하지 못하고 있어 조만간 이란이 ‘맞탈퇴’를 선언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12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이란의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핵합의에 남을 이유가 없다”며 핵합의에서 탈퇴할 수도 있음을 내비쳤다.
이란은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서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모하마드 바게르 노바크트 이란 정부 대변인은 12일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에서 미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합의 내용을 취소할 수도 있는 인물”이라며 이란 핵합의를 파기한 장본인을 신뢰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한편 콜린 칼 전 미 부통령 안보보좌관은 이날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이란 핵합의를 비판하는 이들은 버락 오바마 정부가 장기적이고 검증 가능한 핵 억제를 위해 156페이지에 이르는 합의를 하고도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고 비난했다”며 “트럼프는 공허한 약속이 담긴 (합의문) 1페이지로 북한에 대한 최대한의 압박을 포기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