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 ‘둘이 합쳐 하나가 되는 일.’ 결혼에 대한 이상론적인 설명이죠. 하지만 축복 가득할 것 같은 결혼 준비에도 여러 갈등이 생깁니다. 신혼집 장만과 혼수 문제로 얼굴을 붉히거나 집안끼리 다투기도 합니다. 둘이 하나가 되는 일이 참 어렵습니다. 결혼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들어봤습니다. 》
▼ 남자는 집, 여자는 혼수? ▼
“제가 주택담보대출을 내어 1억8000만 원 하는 방 두 개짜리 빌라를 구했죠. 어느 날 장인어른이 제게 포장마차에서 술 한잔하자고 하시더라고요. 어묵탕에 소주 한잔하는데 장인어른이 조심스레 ‘꼭 빌라여야 했나’라고 말씀하셨어요. 딸 보내는 마음에 아쉬워서 하신 말씀이겠지만 저는 집에 들어가서 밤새워 소주를 들이켰네요.”―안모 씨(32·회사원)
“한 달에 신혼부부 10쌍 정도가 집을 구하러 옵니다. 대부분 남편 쪽이 대출을 받거나 비용을 부담해요. 시어른이 같이 오는 경우도 적지 않고요. 작년에 공동 명의를 바라는 아내분이 있었는데 나중에 시어른이 부동산에 들러서는 ‘절대 안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이번 달에도 신혼부부 두 쌍이 집을 계약했는데 모두 남편 명의로 계약했어요.” ―이경희 씨(56·공인중개사)
“저는 혼수품과 예단을 마련했습니다. 시어머니께서 예단이 성에 안 차셨는지 결혼 뒤에도 3년이나 눈치를 주셨어요. 작년에 결혼한 대학 동기는 예단, 예물을 생략하고 신혼집, 혼수 비용을 신랑과 반씩 부담했어요. 그런데 아직까지도 시부모님이 눈치를 준답니다. 명절에도 무조건 시댁부터 가야 하고요. ‘시댁 우선’ 분위기가 사라지기 전까진 남자가 집을 장만하는 게 나아 보여요.”―박모 씨(29·가정주부)
“혼수품 문제, 고부 갈등, 성격 차이 등 복합적인 이유가 작용해 ‘신혼 이혼’ 소송을 제기하는 여성분이 많습니다. 특히 남편이 전문직에 종사하거나 고소득자라서 시어른이 ‘잘난 내 아들이랑 결혼하면서 혼수를 이거밖에 못 해오느냐’고 면박을 주는 경우가 많죠. 이때 남편이 방관하거나 자신의 어머니 편을 들면 갈등이 폭발하는 겁니다. 이혼 소송 시 피고 1은 남편, 피고 2는 시어머니로 지정해 시어머니에게 위자료를 청구하기도 합니다.”―정재은 법무법인 세광 이혼 전문 변호사
▼ 아낌없이 주는 부모 ▼
“요즘 청년들은 너무 당연하게 부모 도움을 바랍니다. 친구네 딸이 결혼하는데 예단 비용만 3000만 원이 들었다고 해요. 신랑 신부가 여태껏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느라 모아놓은 돈이 없어 결국 부모가 모든 비용을 부담했죠.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30만 원 하는 빌라에서 사는 지인은 아들 결혼한다고 3000만 원을 내주더라고요. 아이를 낳으면 육아까지 맡아주죠. 미워도 자식이니까 도와줄 수밖에 없는 요즘 부모들이 너무 불쌍합니다.”―김모 씨(50대 중반·가정주부)
“2012년 남녀 대학생 384명을 대상으로 소비욕구와 기대결혼비용을 조사했습니다. ‘과한 결혼문화’에 대한 비판적 수용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요. ‘남자는 집, 여자는 혼수’라는 관습을 그대로 답습한 청년들이 많았고 기대결혼비용 역시 높았습니다. 취업이 힘들어 돈은 없는데 남들보다 못한 결혼은 하고 싶지 않아 결혼을 미루거나 결혼 비용을 부모에게 전가시키죠. 부모는 자녀의 결혼에 재력을 쏟아붓느라 노후 준비에 어려움이 생깁니다. 일회성인 결혼식과 예단, 폐백이 아니라 ‘출산, 육아, 가사 분담’과 같이 생활 문제에 대해 논의해야 해요. ‘올바른 결혼’이 무엇인지에 대해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합니다.”―유계숙 경희대 아동가족학과 교수
▼ 계산적인 결혼은 NO! ▼
“아들 결혼시킬 때 며느리가 혼수, 예단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 애들 결혼한 지 20년이 훌쩍 넘었는데 시골에서 농사짓는 사돈이 고맙다며 해마다 쌀이나 고춧가루를 보내와요. 그러면 저는 사돈께 꼭 값을 지불합니다. 며느리가 우리 아들과 결혼해준 게 더 고맙다고 제발 마음의 짐을 내려놓으라고 사돈한테 말하죠.”―최모 씨(75·서울 종로구)
“서른두 살, 스물아홉 살 아들만 둘이에요. 주변에서는 아들들 결혼시키려면 집을 두 채나 장만해야 하니 힘들겠다고 걱정하죠. 물론 형편이 된다면 애들에게 보태줄 생각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예단, 예물, 폐백을 다 생략하고 싶어요. 금액 하나하나 따져가며 계산하는 혼사는 치르고 싶지 않아요.”―김도연 씨(54·음식점 운영)
“남들에게 보여주는 결혼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행히 여자친구도 동의했죠. 남들과 비교되겠지만 중요한 건 ‘경제적 현실’과 ‘저희의 마음’ 아닐까요? 결혼식은 양가 친척 어른들만 모셔 조촐하게 치르고 친구들을 위한 작은 파티를 따로 열고 싶어요.”―정낙영 씨(28·대학생)
▼ 중요한 건 ‘결혼 후의 삶’ ▼
“만약 아이가 생기면 한 달에 하루씩은 온전히 혼자서 아이를 돌보기로 했어요. 아이와 각자 추억을 쌓으면서 한편으로는 서로에게 하루씩 ‘완벽한 휴식’을 주기 위해서죠. 또한 예비 신부가 기르는 고양이에 대해서도 논의했어요. 고양이를 계속 키우는 대신 안방에는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로 했죠. 아침에는 로봇청소기를 돌리고 저녁에는 정전기부직포로 바닥을 닦을 겁니다. 결혼은 현실이니 생활적인 부분을 미리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김소현(29)·최영훈 씨(30) 예비 부부
“예비 시어머니께서 ‘커플 상담’을 받아보라며 상담권을 끊어주셨어요. ‘결혼식’이 아닌 ‘결혼 생활’을 준비하는 커플은 처음 봤다며 상담 교수님도 놀라셨죠. 호칭 문제의 경우, ‘너네 엄마, 우리 엄마’라며 선을 그어선 안 되고 ‘서울 엄마, 부산 엄마’라는 객관적인 단어로 불러야 합니다. 또한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도 기억에 남아요. 결혼 생활 만족도는 배우자를 통해서만 채우는 게 아니라 스스로 채워가야 하기 때문이죠. 경조사비 예산을 정해 부모님 용돈도 그 안에서 양가 동일하게 지출하기로 했어요. 상담을 하며 ‘내가 본질적인 부분을 놓칠 뻔했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죠. 이 덕분에 결혼을 준비하는 제 마음도 한결 편안해졌답니다.”―홍지윤 씨(27·회사원)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김수현 인턴기자 성균관대 사회학과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