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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브로에 우뜨라] 월드컵 찾은 축구여행가, 언젠가 우리도

입력 | 2018-06-19 05:30:00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숙소? 노숙하면 되지! 이동? 공짜 기차로!


단일 종목으로는 지구촌 최대 스포츠 이벤트인 월드컵이 한창 열기를 더하고 있습니다. 우리 태극전사들이 베이스캠프로 삼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기점으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보면 참으로 흥미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어깨부터 엉덩이 아래까지 내려오는 커다란 배낭 하나를 짊어지고 러시아 구석구석을 이동하는 사람들, 일명 FT(풋볼 트래블러·축구 여행가)들이 대표적입니다. 전 세계 곳곳에서 몰려든 이들의 준비는 지극히 단순합니다. 그저 월드컵 직전 해의 12월이 가기 전에 국제축구연맹(FIFA) 공식 홈페이지에 접속해 관심이 가는 주요 경기 입장권을 구입하는 것이 사실상 전부랍니다. 물론 자국에서 대회 개최국까지 이동하는 왕복 항공편도 마련해야 합니다.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대체 어디에 머물며, 어떻게 개최도시들을 오갈 것인지에 대한 지극히 당연한 궁금증입니다. 월드컵이나 올림픽 등 최소 3주 이상의 국제대회를 취재하는 기자들에게도 주요 동선에 대한 교통 및 숙박은 기본 중의 기본이거든요.


그런데 걱정하지 말라고 합니다. 배낭을 머리에 베고 눕는 곳이 곧 숙소라나요?


우리와 스웨덴의 러시아월드컵 조별리그 F조 1차전이 열린 18일(한국시간) 니즈니노브고로드에서 만난 제이미 홀턴(57·아일랜드)은 6번째 ‘월드컵 직관(직접 관전)’의 화려한(?) 경력을 자랑합니다. 모스크바에서 여정을 시작한 제이미는 앞으로 20일 가량 러시아에 머물 참인데, 숙소는 나흘에 하루 꼴로 값이 싼 호스텔이나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했다고 합니다. 이유는 하나. 몸을 씻기 위해서라네요. 대부분의 잠은 장거리 버스와 기차에서 해결한답니다.


이번 대회부터는 테러와 훌리건 방지를 위해 ‘팬 ID‘를 발급하고 있는데, 이를 발급 받은 사람들은 누구나 무료로 기차를 이용할 수 있답니다. 물론 홈페이지 예약은 필수이지만 이것저것 다 귀찮으면 그냥 햄버거로 배를 채우며 야간버스로 24시간 이상 달려가면 된답니다.


우리 대표팀이 베이스캠프로 삼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호텔 식당에서 마주친 한 이란 팬도 자국의 월드컵 경기 현장을 꼬박꼬박 개근했다고 자랑을 해왔습니다. 그는 테헤란에서 여행 가이드로 활동 중인데, 여행 에이전시 사업도 구상하고 축구도 마음껏 볼 수 있어 4년 주기 축제를 꾸준히 찾는답니다. 그나마 자신은 금전적으로 어렵지 않지만 일행 대부분은 3년 간 모은 자금을 월드컵 관전에 전부 쏟아 붓는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부러운 건 왜일까요. 이렇듯 월드컵 현장을 찾을 때 중요한 건 돈이 아닌 정성일 겁니다. 축구를 향한 무한 애정과 사랑은 물론이고요. 언젠가 훗날, 붉은색 유니폼을 입은 아들과 배낭 하나 짊어지고 태극전사들의 경기를 관전할 순간을 상상해 봅니다.


러시아 니즈니노브고로드에서


※ ‘도브로에 우뜨라’는 러시아의 아침 인사말입니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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