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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정의의 여신’ 디케에게 길을 묻다

입력 | 2018-06-20 03:00:00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란 말이 있습니다. ‘돈 있는 자는 죄가 없고 돈 없는 자는 죄가 있다’는 이 말에 많은 사람이 공감할 정도로 사법 불신이 팽배해 있습니다. 이번에는 사법부의 존립 기반을 뿌리째 흔드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2011년 9월∼2017년 9월 재임) 법원행정처 주도로 판사들의 성향을 조사하고 청와대와 시국사건 판결을 거래했다는 의혹이 있습니다. 사법부가 정권의 입맛에 맞는 판결을 해주는 대가로 상고 법원의 설치를 요구했다는 겁니다. 사전에도 없는 ‘재판 거래’라는 신조어가 신문 지상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진실이 밝혀져야 하겠지만 공명정대해야 할 재판이 특정 목적을 위해 거래 대상으로 전락했다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일 겁니다.

‘○○일보 첩보 보고, 민변 대응 전략, 변호사협회 압박 방안…’ 이번에 법원행정처 컴퓨터에서 발견된 문서 제목들입니다. 법원행정처가 대법원장의 정보원 역할을 하며 정권과 거래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단서들입니다. 국정원 댓글 조작, 전교조 법외노조, KTX 승무원의 해고 등 굵직한 사건들이 그 당시에 대법원에서 원심이 뒤집혔습니다.

사법부는 크게 동요하고 있습니다. 변호사 2000여 명이 관련자 처벌을 주장하며 시국 선언을 했고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열리는 등 탈출구를 모색하고 있으나 여의치 않습니다. 사법부 스스로 사법권의 독립을 훼손했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매우 큽니다.

“만약 사법권이 입법권과 결합하면 재판관이 입법자를 겸하기 때문에 시민의 생명과 자유가 권력에 의해 침해될 것이며 행정권과 결합하면 재판관은 압제자의 힘을 가질 것이다. 같은 사람이나 집단이 이 세 가지 권력을 모두 행사한다면 모든 것을 잃을 것이다.”

일찍이 프랑스의 사상가 몽테스키외(1689∼1755)의 저서 ‘법의 정신’(1748년)에서 사법권 독립과 삼권분립을 주장한 내용입니다. 오늘날 문명국가는 사법권의 엄격한 독립을 보장합니다. 사법권의 독립 중에서도 핵심적인 것이 재판의 독립입니다.

우리 헌법도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헌법 제103조)는 규정을 두어 재판의 독립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재판이 흔들린다는 것은 국가 기강과 질서가 무너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법부의 재판은 사람들이 억울하고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의지할 수 있는 최종적인 수단입니다. 그마저 믿을 수 없다면 국민들이 기댈 곳은 어디일까요.

대법원의 대법정 입구에는 정의의 여신상이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디케(Dike·사진)입니다. 율법의 여신 테미스와 제우스 사이에서 태어난 디케는 정의가 훼손된 곳에 재앙을 내립니다. 왼손에 들고 있는 저울은 공명정대함을, 오른손에 들고 있는 법전(또는 칼)은 엄격한 법 집행을 상징합니다.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는 수많은 당사자들이 신 앞에 있습니다. 디케여! 이들 앞에서 당신의 저울과 칼은 어떤 길을 제시하겠습니까.

박인호 용인한국외대부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