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 콜이 시작한 노동시장 개혁 슈뢰더와 메르켈이 발전시켜 ‘라인강의 기적’ 넘는 호황 이뤄 佛 쥐페가 獨보다 먼저 착수한 개혁 조스팽이 뒤집고 역주행한 결과… 마크롱 전까지 ‘잃어버린 20년’
송평인 논설위원
독일 레겐스부르크대 프란츠 필츠 교수는 “1997년 4월 고용촉진법(Arbeitsf¨orderungsgesetz)의 발효로 독일 노동시장 정책의 근본적인 방향 전환이 이뤄졌다”고 했다. 우리나라에는 흔히 사회민주당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노동개혁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고용촉진법은 기독민주당의 헬무트 콜 정부 집권 시절 입안됐다.
슈뢰더 총리는 그 법이 발효된 때로부터 1년 6개월 뒤인 1998년 10월 집권했다. 슈뢰더 총리의 업적은 콜 정부의 방향 전환에 딴지를 걸지 않고 오히려 강화해 ‘어젠다 2010’이라는 개혁안을 만들어 실행한 것이다. 2005년 집권한 기민당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또 그것을 이어받았다. 잇단 정권 교체에도 불구하고 일관성 있게 이어진 노동시장 개혁이 오늘날 ‘라인강의 기적’을 넘어서는 독일의 번성을 가져왔다.
2007년 집권한 공화당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주 35시간 노동제의 완화를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됐지만 실패했다. 2012년 집권한 사회당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비록 자기 당이 도입한 제도이지만 폐해를 인정하고 2016년에 일부 완화를 이뤄냈지만 국민들로부터 사회당 공화당 모두 정치적 불신을 받은 뒤였다.
슈뢰더의 개혁이 반발 없이 이뤄진 것은 아니다. 사민당 내에서 오스카어 라퐁텐 경제장관을 중심으로 강력한 저항이 있었다. 슈뢰더의 개혁은 1999년 라퐁텐이 사임하면서 본격화됐다. 라퐁텐은 결국 사민당을 탈당해 좌파당을 결성했다. 사민당과 좌파당의 분리는 사민당의 총선 패배를 가져오고 기민당의 네 차례 연임을 허용한 결정적 계기가 됐지만 사민당은 선거에서 지더라도 나라를 망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슈뢰더 총리가 집권 내내 노동시장 개혁에 매진했음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 막대한 통일비용의 후유증이 워낙 커 독일은 낮은 성장률과 높은 실업률에 시달렸다. 2005년까지만 해도 독일은 평균 1%의 성장률로 유로지역에서 이탈리아와 포르투갈 같은 저성장그룹으로 분류됐고 실업률도 11.2%까지 치솟았다. 2006년부터 실업률이 떨어지기 시작해 10년이 지난 2016년 6% 미만으로 떨어져 ‘라인강의 기적’ 당시 수준으로 돌아오고 2017년 말 3.8%까지 떨어졌다. 메르켈 총리는 2025년까지 3%의 완전고용 수준을 달성하겠다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조스팽 총리가 도입한 35시간 노동제는 단기적으로는 큰 효과를 발휘한 것처럼 보였다. 일자리 나누기를 통해 30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졌다. 1997년 10.9%였던 실업률은 2001년부터 8%대로 떨어졌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였다. 35시간 노동제는 연장근무수당 지출 비용을 늘려 결국 기업의 인건비를 증대시킴으로써 프랑스의 경쟁력을 떨어뜨렸다.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다시 실업률이 치솟기 시작해 2013∼2016년 실업률은 4년 연속 10%대로 독일의 2배 이상 수준을 기록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2015년 올랑드 정부의 경제장관으로 의회에 경제개혁안 107개를 제출했다. 이것을 마크롱 법안이라 부른다. 35시간 노동제를 완화하는 주요 법안이 통과되지 못하자 그는 사회당 정부를 뛰쳐나왔다. 그의 압박으로 사회당 정부는 2016년 미리암 엘 콤리 노동장관의 이름을 딴 엘 콤리 법을 통과시켰다. 법보다 단체협약을 우선 적용하고, 중소기업에는 단체협약의 적용조차 면제하는 등 주요 내용은 슈뢰더 이래 독일의 노동시장 개혁을 20년이 지나 그대로 본받고 있다. 결국 프랑스의 ‘잃어버린 20년’이었던 것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