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으스파르타
장미축제 개막 퍼레이드에 등장한 장미꽃 웨딩드레스의 신부.
도시 진입을 알리는 표지판을 지나자 왼편으로 빌딩 몇 채가 보인다. 쉴레이만데미렐대(1992년 개교)와 기숙사다. 쉴레이만 데미렐(1924∼2015)은 으스파르타 태생 터키 9대 대통령(1993∼2000년). 7번 총리 연임 후 국가수반(7년)이 됐으니 평생을 국가에 헌신했을 터. 그러니 그의 이름을 붙인 대학이 있을 만하다. 그런데 여기엔 8개가 더 있다. 총 학생 수는 9만 명. 주민(25만 명)의 3분의 1 이상(36%)이 대학생인 대학도시다.
그 배경은 대도시 안탈리아와 가까운 교통 요지에다 고대 로마부터 주교가 상주한 요충지란 역사 덕분. 적당한 습도의 온화한 기후라 장미 재배 적지가 됐던 것만큼 꿈나무 육성의 대학도시로 이만한 적지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도심도 대학생들로 생기발랄하고 깔끔하며 곳곳 공원도 쾌적했다. 특히 서두르는 이 없는 여유가 더더욱 돋보였다.
으스파르타 시내에서 한창이던 장미축제 개막 퍼레이드.
시청 광장에선 오토만 제국 군대 복장의 남성 군악대가 전통악기로 연주했다. 행렬에는 시민들도 동참했다. 소방차와 앰뷸런스 경찰차는 줄지어 연신 경적을 울려 축제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시민들도 일을 접고 도로에 나와 행인 머리 위로 장미꽃잎을 뿌렸다. 축제는 장미꽃 수확을 알리는 신호탄. 장미꽃은 5, 6월 중 40∼50일간 따는데 즉시 보일러에 넣어 그 향이 가미된 기름과 물을 받아낸다. 장미유는 1㎏에 1만 유로(약 1278만 원)인데 2015년 수출액은 1500만 유로(약 192억 원). 장미농장 가구 수도 1만에 이른다.
이튿날 오전 4시 반. 나는 여기서 25㎞ 떨어진 알드칠리 마을(해발 950m)로 향했다. 부르두르 호반의 이곳은 산등성에 거대한 장미장원이 조성된 곳. 장미꽃잎은 해 뜨기 전에 딴다. 해 뜬 후엔 햇빛과 온기로 꽃잎이 발효하고 그리되면 향이 풍성한 기름과 물을 얻지 못한다. 이 마을에선 꽃따기 체험행사도 한다. 가보니 벌써 체험자들이 밭처럼 고랑을 낸 장미장원에서 이슬이 촉촉한 분홍 꽃을 따고 있었다. 밭에선 장미향이 진동했는데 사람들은 그 꽃을 하늘로 던져 꽃비를 맞는가 하면 꽃무더기에 얼굴을 묻고 향을 음미했다. 꽃밭 옆 텐트와 오두막에선 빵을 구워 차와 함께 냈다. 그 빵은 장미향 짙은 꿀과 염소치즈를 발라 먹는다.
수확한 꽃잎은 즉시 큰 부대에 담겨 옮겨진다. 귀뷔를리크라는 증류소다. 여기선 거대한 증류기로 장미유와 장미수를 추출한다. 부대에서 쏟아낸 분홍꽃잎이 무더기로 쌓인 공장. 나는 두 손으로 꽃잎을 퍼 증류용 보일러에 넣었다. 장미유는 여기에 물을 넣고 끓이면 된다. 수증기를 냉각하면 장미수, 보일러에 남겨진 것을 뜨면 장미유다. 귀뷔를리크는 이 마을 여섯 장원이 설립한 협동조합. 여기선 ‘로젠스(Rosence)’라는 브랜드 상품도 내지만 대부분 장미유는 프랑스 미국 캐나다 등 화장품과 향수 회사에 공급된다. 터키 브랜드 장미유 귈샤(G¨ulsha)는 공항 면세점에서 20mL들이 한 병이 40달러(약 4만3000원)였다.
▼ 터키의 향으로 자리한 불가리아의 장미 ▼
터키의 문익점 이스마일 에펜디의 동상과 으스파르타의 장미축제 개막 퍼레이드에 참가한 불가리아 축하사절단.
장미유는 이슬람 세계에서 아주 중요하다. 성지 메카(예언자 무함마드의 탄생지) 단장에 그걸 써서인데 장미는 무함마드가 가장 좋아했던 꽃이다. 그런데 모든 장미에서 기름을 얻는 건 아니다. 오직 하나, 분홍색의 ‘로자 다마스케나’(다마스쿠스 장미)뿐이다. 이건 먹기도 하는데 터키 딜라이트(Delight·단맛의 디저트)에서도 백미에 든다.장미유의 출처는 꽃잎. 그 여린 꽃잎에서 기름을 얻자면 대체 얼마만큼이나 필요할까. 놀라지 마시라. 장미유 1kg을 얻으려면 꽃잎 4t이 필요하다. 장미향이 풍성한 장미수(水)는 그 부산물로 500배(500kg)쯤 나온다. 장미유 장미수는 화장품 재료. 기름을 넣으면 향이 바른 후에도 9시간이나 지속된단다.
으스파르타(Isparta)를 ‘장미의 도시’로 만든 이는 불가리아 태생의 이스마일 에펜디다. 그는 ‘장미의 계곡’이라 불리는 카잔루크에서 태어났는데 오스만제국의 해체가 가속화되던 1888년 발칸반도의 이슬람교도들이 종교적 탄압을 피해 피난할 때 터키로 이주했다. 이때 지팡이에 그곳의 장미 씨앗을 숨겨와 ‘터키의 문익점’이 됐다. 불가리아의 카잔루크는 세계 최초로 장미유를 생산(1870년)한 발상지다. 그래서 원료인 다마스쿠스 장미의 유출을 철저히 봉쇄했다. 하지만 에펜디에 의해 유출됐고 그보다 수십 년 전 카잔루크를 떠난 이주민이 전수해준 기술로 으스파르타는 그 5년 후부터 장미유 생산을 개시했다. 그리고 현재는 생산량에서 카잔루크를 뛰어넘는다. 으스파르타 도심의 주지사광장엔 에펜디의 동상이 서 있는데 거긴 이렇게 씌어 있다. ‘우리에게 미소를 가져다 준 이.’
아나톨리아의 지중해변 휴양도시 안탈리아. 고대 소아시아(Asia Minor)라 불리던 때부터 전략요충지였던 항구도시 안탈리아는 터키 여행자에게 ‘참새 방앗간’ 격의 지중해 타운이다. 으스파르타는 거기서 북쪽으로 126㎞쯤 떨어졌다. 그런데 고도 0m의 안탈리아와 달리 으스파르타는 무려 1000m 높이의 고원. 아나톨리아를 북서에서 동남으로 활처럼 휘면서 가로지르는 타우루스산맥 지형에 들어서 있다. 그렇다 보니 기후가 바다에 면한 이스탄불이나 안탈리아와 크게 다르다.
타우루스는 라틴어로 ‘황소’인데 북반구의 겨울하늘 성좌의 중심도 같은 이름이다. 그 이유는 이 타우루스산맥이 인류 문명사에 엄청난 역할을 한 덕분이다. 지중해의 다습한 공기가 계절풍의 영향으로 소아시아의 대륙으로 불어오면 급작 상승을 유도하는 타우루스산맥에 의해 크게 요동을 친다. 강풍에 벼락을 동반한 뇌우와 호우다. 그렇게 해서 타우루스산맥은 지표에 수분 공급원이 되는데 세계 4대 문명 발상의 근본인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두 강의 범람이 바로 여기서 왔다. 그런 뒤 바람 방향이 바뀌어 대륙에서 바다로 불 땐 맑고 청량한 날이 계속되며 햇살이 쏟아진다.
으스파르타에서 50분 거리로 해발 1000m 고원의 에기르디르 호수는 그 물빛이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비경으로 서울 면적의 78%에 육박한다.
※ 여행정보
도로(으스파르타 기점)=이스탄불 573㎞, 안탈리아126㎞,이즈미르 307㎞, 산드클르 105㎞, 아피온 164㎞, 에기르디르(호수) 37㎞, 코니아 243㎞
으스파르타: 장미페어=장미축제(올해는 5월 11∼15일) 중 시내 컨벤션센터에선 장미 관련 화장품 상품전(G¨ul Fuari)도 열린다. 부스(현지 업체)에선 상품도 판매
케밥치카디르=주지사광장 앞에 있는 167년 역사의 케밥 전문 식당(1, 2층). 케밥은 ‘꼬치구이’의 통칭. 쾨프테(떡갈비와 비슷)와 타북시시(치킨꼬치) 등 다양한 케밥 제공
힐턴 가든 인 으스파르타=올해 개장한 시내 힐턴호텔.
환율=1터키리라(TL)는 254원 안팎
카펫박물관=주민이 기증한 카펫 5000장이 10층 규모 전시장에 걸려 있다. 꼭대기 층은 도시 전망대.
에기르디르 호수: 으스파르타에서 차로 50분 거리의 아름다운 호수. 두 섬을 잇는 일직선 둑이 곶(串)처럼 돌출해 호수를 둘러 가르는데 그 말단에 호텔과 레스토랑이 있다. 호반의 멜로디(Melodi) 식당에서 디너도 낭만적인 선택.
자유여행: 지중해변 항구도시 안탈리아에서 렌터카로 직행. 으스파르타에서 멀지 않은 온천휴양지 아피온카라히사르(본보 5월 26일자 보도), 수피즘(이슬람 신비주의교파) 댄스로 이름난 코니아(옛 셀주크튀르크의 수도)도 들러볼 만하다.
터키여행 정보: 투르크투어
글 사진 / 으스파르타=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