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로버트 카파와 戰場
스페인 내전 당시 공화파 병사가 머리에 총을 맞고 쓰러지는 순간을 로버트 카파(오른쪽)가 담아낸 ‘어느 공화파 병사의 죽음’. 뉴욕국제사진센터 홈페이지
김이재 지리학자·경인교대 교수
베를린 정치대에 입학한 그는 헝가리 경제가 붕괴해 가족의 지원이 끊기자 데포 통신사에서 암실 보조로 일하며 사진을 처음 접했다. 소련에서 스탈린과 대립하다 추방된 레온 트로츠키가 1932년 코펜하겐에서 첫 대중 연설을 하는 장면을 찍으며 사진기자로 데뷔했다. 이후 파리에서 독일 출신 유대인 여성 게르타 포호릴레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궁핍한 생활이 이어지자 1936년 그는 로버트 카파로, 포호릴레는 게르다 타로로 개명한다. 둘은 ‘로버트 카파’라는 미국 사진작가를 만들어내 사진 가격을 3배나 올리며 재미를 본다.
카파의 명성을 높인 건 스페인 내전(1936∼1939)이었다. 카파와 타로는 마드리드, 세고비아 등에서 현장감 넘치는 사진을 전송했다. 특히 안달루시아의 코르도바에서 한 병사가 총에 맞아 쓰러지는 장면을 포착해 스타가 됐다. 하지만 1937년 타로가 탱크에 치여 숨지자 카파는 충격에 빠진다. 표지에 대표작 ‘총 맞는 군인’ 사진을 넣은 책 ‘진행 중인 죽음’(1938년)을 고인에게 헌정했다.
카파는 1947년 동료들과 매그넘 통신사를 창설하고 중동전쟁(1948∼1950년) 취재를 위해 이스라엘을 찾았다. 인도차이나 전쟁 막바지였던 1954년 ‘라이프’지의 베트남 특파원으로 파견돼 5월 25일 프랑스군이 홍강 삼각주의 요새를 철거하는 작전을 취재한다. 수풀 사이로 진군하는 프랑스군을 찍기 위해 멈춰 선 순간 그는 지뢰를 밟고 산화했다. 베트남에서 전쟁 중 숨진 첫 미국인 기자였다.
매그넘 창립 동지였던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은 사진 에세이 ‘영혼의 시선’에서 카파를 이렇게 추억했다. ‘그는 소용돌이 속에서 고결하게 싸웠다. 운명의 여신은 그가 영광의 절정에서 쓰러지길 원했다.’
김이재 지리학자·경인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