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0월, 2차조사 앞두고 삭제… 대법 “퇴임 법관 통상적 절차” 행정처 하드디스크는 檢제출 안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고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사용하던 공용 PC의 하드디스크가 퇴임 직후인 지난해 10월 완전히 삭제돼 복구가 불가능한 것으로 26일 알려졌다.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법원의 2차 조사를 앞둔 시점이다..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대법원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박병대 전 대법관의 PC 하드디스크도 퇴임 때인 지난해 6월 같은 방식으로 삭제돼 보관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디가우징은 강력한 자력을 이용해 물리적으로 하드디스크의 모든 데이터를 완전히 삭제하는 기술로, 삭제된 데이터는 복구가 불가능하다.
법원행정처는 검찰에 제출하는 자료를 선별하는 과정에서 이런 사실을 파악했다고 이날 밝혔다. 대법원은 “디가우징은 퇴임 법관의 전산장비에 대한 통상적인 업무 처리 절차인 전산장비운영관리지침 27조 등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상훈 이인복 전 대법관 컴퓨터 등 종전에 퇴임한 대법관이 사용하던 하드디스크도 같은 방법으로 디가우징됐다고 대법원은 덧붙였다.
검찰 관계자는 “양 전 대법원장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해 조사가 착수될 시점에 디가우징된 것이어서 경위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검찰 관계자는 “제출된 문건 410개만 분석해서 재판 거래 의혹이 사실무근이라고 결론 낸다면 누구도 수긍할 수 없을 것”이라며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객관적 자료를 많이 확보해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철저한 수사를 위해서는 하드디스크 실물이 제출돼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 측은 “관리자로서 책임을 다할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이 마련되면 제출할 수 있다”며 하드디스크 실물 추가 제출의 의지를 남겼다. 법원행정처는 양 전 대법원장 재직 시절 행정처 차장과 처장으로 근무했던 고영한 대법관이 현직에 있고 그의 PC에 자료가 남아 있을 수 있는 만큼 경우에 따라 검찰에 관련 자료 제출을 협조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김윤수 기자 y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