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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毒 없는 건 없어… 한국 최저임금 정책 알맞은 속도 찾아야”

입력 | 2018-06-27 03:00:00

크리스토프 슈미트 독일 국가경제자문위원장
―김광두 경제자문회의 부의장 진행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왼쪽)이 22일(현지 시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크리스토프 슈미트 독일 국가경제자문위원장과 만나 최저임금, 근로시간 단축 등 한국 경제 현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슈미트 위원장은 “한국이 가진 강점을 극대화하라”며 제조업을 업그레이드하는 방식의 혁신을 조언했다. 헤이그=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캐나다 등 전 세계 주요 11개국의 정부 경제 정책 자문기구 수장들이 모이는 국제경제정책자문기구 연례회의가 22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렸다. 올해 멤버가 된 한국도 처음 참석해 세계 경제와 각국의 경제 방향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이 회의는 3년 전 독일 경제의 ‘현인(賢人)’으로 불리는 크리스토프 슈미트 독일 국가경제자문위원장 주도로 만들어졌다. 독일은 한국이 당면한 경제 현안인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을 미리 경험했다. 또한 제조업의 위기와 분단을 극복하고 연평균 2% 이상 성장과 5% 미만의 실업률로 경제 성과를 내고 있다. 경제 정책 최고자문기구인 국민경제자문회의 김광두 부의장이 22일(현지 시간) 헤이그에서 슈미트 위원장과 만나 한국의 당면한 경제 현안에 대해 물었다. 》
 
―올해 1월 한국 정부는 최저임금을 16.4% 올렸다. 최저임금을 올려서 저소득자의 소득을 올리고, 국내 소비와 내수 진작을 장려하자는 목적이었는데 시행 이후 실업률이 올라가고 있다.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이 그 주요 원인이라는 진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합리적인 의심이다. 독일도 2015년 최저임금제를 도입하는 등 지난 10년간 저소득층을 경제활동과 소비에 참여시키는 방향으로 소득 재분배 정책을 폈다. 한국과 같은 목적에서다. 독일은 두 가지 방향으로 재분배 정책을 폈다. 노동시장 개혁을 통해 저숙련공 고용을 늘려 노동시장에 새로 편입시키는 동시에 임금 격차는 강도 높은 세금 분배로 폭을 줄였다. 시장, 임금, 자본 소득 격차는 컸지만 세금을 낸 이후 소득 차이는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면서 잠재적인 소득과 소비에 일관성이 생겼고 결과적으로 성공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정책 추진 속도가 적절하지 않으면 반대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한국은 최저임금을 너무 급하게 올려서 고용이 타격을 받지 않도록 밸런스를 맞추는 노력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반도체 업종을 제외하면 한국 기업들의 영업이익과 순이익이 모두 감소하고 있다. 경쟁력 저하와 함께 최저임금 등 비용까지 오르니 기업들이 힘들다. 그 결과 미숙련 저생산 노동자들에 대한 고용이 줄어들어 소득 불평등은 오히려 심화되고 있다.

“독일도 2005년까지는 실업률이 엄청나게 높았다. 노동 개혁이 시작됐고 저숙련공들에게 낮은 임금을 주면서 고용 자체를 늘렸다. 그리고 낮은 임금은 세금 이전으로 보완했다. 10년 만에 무려 400만 명의 고용이 늘었다. 시장은 최대한 자유롭게 놔두되 세금을 통해 격차를 줄이는 방식이 성공했다. 최대한 많은 일자리를 만들면서 소득 재분배를 이루는 게 현대 시장경제 정책의 핵심이다. 그 과정에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최저임금과 함께 주당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는 법안이 통과됐다. 기업들이 곤란해하는 건 3개월마다 그 평균시간을 지켜야 한다는 점이다. 기업에 들어오는 주문이 많을 때도 있고 적을 때도 있기 때문이다.

“노동시간의 유연성은 한국이 계획대로 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독일에서도 비슷한 토론이 있었는데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하는 건 고용주뿐 아니라 노동자 입장에서도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매일 규칙적인 시간에 나와서 육체적으로 일을 해야 했지만 이제는 근로 형태가 바뀌었다. 디지털 시대에 젊은이들은 가족과의 삶과 일을 병행하기를 원한다. 낮에도 아이를 돌볼 수 있어야 하고 어떤 날은 아이만 돌보는 날도 있어야 한다. 그 대신 저녁에도 일할 수 있다. 고용주 역시 주문이 들어올 때는 소비자의 니즈에 맞춰 모든 노동자를 동원해 일하고, 그 대신 주문이 없을 때는 노동자들이 쉬기를 바란다.”

―독일은 주당 근로시간이 몇 시간인가. 그리고 평균 기준 기간은 어떤가.

“독일은 주당 근로시간이 48시간이다. 유럽연합(EU) 기준이다. 과거 독일은 평균 8시간, 최장 10시간까지 일 단위로 기준을 정했지만 EU 기준에 따라 주간 단위로 바꾸었고 그렇게 유연성 있게 바꾼 건 현명했다. 독일의 주당 근로시간 48시간은 6개월 단위로 평균을 내서 진행된다.”

―특히 3개월로 강제하면 가장 피해를 보는 건 저생산성 노동자들인 것 같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특히 고용 기반이 취약한 저숙련자는 고용이 유지되면서 가능한 한 많은 시간을 일하는 게 아주 중요하다.”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모두 의도가 좋다. 그러나 상황을 고려치 않고 너무 급하게 실시하면 실업률은 높아지고 개인 소득 불균형은 악화될 수 있다. 의도가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결과 아닌가.

“경제 정책에서 매우 자주 발생하는 현상이다. 좋은 의도가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건 아니다. 독일 역사가 파라셀수스는 500년 전 ‘독이 없는 건 없다. 얼마나 먹느냐에 따라 독이 될 수도 약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을 남겼다. 좋은 것도 너무 많으면 전혀 반대의 결과가 나온다. 좋은 것을 하기 위한 가장 알맞은 양과 속도를 찾는 게 경제정책인데, 정확히 어느 정도가 맞는 건지 알기 어렵다. 정책입안자가 힘든 이유다.”

―한국 정부 정책입안자는 ‘정의’라는 가치를 경제에 집어넣고 있다. 정의는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고용을 해친다면 정의롭지 않은 것이다. 경제 정책에 있어 정의란 바로 일자리라고 생각한다.

“동의한다. 각 분야에서 정책 성공의 핵심은 많은 이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사람을 돕는 가장 중요한 방법도 일자리를 갖게 하고 돈을 벌게 하는 것이다.”

―혁신에는 독일형 ‘인더스트리 4.0’과 미국형 실리콘밸리, 두 가지 타입이 있다. 실리콘밸리는 새로운 아이디어의 사업화를 통해 더 높은 수익을 내는 모델이고, 인더스트리 4.0은 기존의 제조업을 기반으로 생산성을 높이고 디지털화해서 업그레이드하는 개념이다. 제조업을 기반으로 하는 한국은 독일형 혁신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서비스 분야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미국과 달리 한국과 독일은 제조업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럴 때 한 가지 좋은 원칙이 있다. ‘당신들이 가진 강점을 극대화하라.’ 미래에 성공하려면 지금까지 한국을 성공하게 한 게 뭔지를 돌아봐야 한다. 독일 인더스트리 4.0은 지금까지는 성공적이다. 기업과 국가가 서로 결합을 잘했기 때문이다. 시장과 밀접한 혁신은 기업이 맡고, 근본적인 연구는 공공 분야가 맡는 역할 분담이 잘됐다.”

―한국은 대기업이 발전해 있고 독일은 히든챔피언이라고 불리는 중소기업이 강력하다. 시장 자율에 맡겨 놓으니 대기업만 커지고 중소기업이 사업 기반을 잃어버려 대기업을 규제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이분법적인 접근은 맞지 않는 측면도 있어 고민이다.

“독일은 미텔슈탄트로 불리는 중소기업이 발달돼 있다. 노동자의 수는 수백 명에 불과하지만 틈새시장을 발굴해 그 분야만큼은 글로벌 시장을 제패한 기업들이 많다. 그러나 대기업과 그 주변 중소기업의 혁신 이퀄 시스템(혁신을 통한 동반 성장)도 잘 형성돼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서로 장점이 뚜렷하다. 중소기업은 더 빠르고 유연하며 새로운 분야로의 접근이 쉽다. 대기업은 규모가 큰 프로젝트를 맡을 수 있다. 한국이 대기업과 조화를 맞추기 위해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것은 아주 합리적인 결정이다. 그렇다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따로 가는 건 결코 아니다.”

―북한과의 대화가 이어지고 있고, 평화 무드가 조성되고 있다. 우리는 진정 평화를 원한다. 독일은 이미 통일 경험이 있다. 한국은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결과적으로 독일 통일은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아주 성공적인 프로젝트였다. 이제는 고용도 소득도 인프라도 모두 좋아져 경제 번영에 일조하고 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국도 오랜 호흡으로 보면서 미리 준비해야 한다. 독일은 소득이 빠르게 올라가다가 통일 이후 2000년대 초반까지 침체기가 왔다. 당시 이코노미스트가 독일을 ‘유럽의 병자’라고 할 정도였다. 사회주의 경제의 생산가용성에 엄청난 과대평가가 있었다. 실제 통일 후 보니 동독 지역의 생산 기계는 낡고 파괴돼 쓸모없었다. 또한 환경이 고려되지 않은 난개발이 심각했다. 지역적 갈등도 발생해서 동독에 돈이 흘러들어가면서 서독 내 낙후 지역이 개발 문제에서 상대적으로 피해를 입기도 했다. 이런 갈등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통일은 육상으로 치면 스프린트 경기가 아니라 마라톤이다.”
 
헤이그=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