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혁 경제부 기자
교육 현장도 동반 멘붕이다. 중3 담임을 맡고 있는 현직 교사 A 씨는 “시도 때도 없이 바뀌는 입시제도 때문에 교사들이 장기적인 교육 철학을 고민하기보다 입시에 유리한 방식을 분석해 단기적 성과를 내는 데 급급해졌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중3 자녀를 뒀다는 공기업 고위 임원 B 씨는 “공공기관들도 비슷한 심정”이라고 했다. 공공기관을 평가하는 기준이 최근 2, 3년 사이 큰 폭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B 씨는 “장기 경영 전략을 짜는 것보다 매년 바뀌는 경영 평가 기준에 맞춰 성과를 내는 게 더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당장 경영 평가에서 D등급(미흡) 이하 점수를 받으면 공공기관들은 기관장 경고나 해임, 성과급 미지급과 같은 불이익을 받는다.
매년 바뀌는 평가 기준 탓에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의 관심은 온통 눈앞의 평가에 쏠려 있다. 한국전력공사의 경우 일자리를 늘리라는 정부의 요구에 최근 신입 사원 채용을 대폭 늘리면서 5년 차 이하 사원급 직원 비율이 20%를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신입사원이 지나치게 많은 기형적 인력 구조가 만들어진 셈이다. 이에 한전 내부에서는 벌써부터 10년, 20년 뒤 인건비 부담 증가와 특정 연차 집중 문제 해소 방안을 놓고 고민하고 있지만 경영평가 때문에 누구도 문제 삼지 못하는 분위기다.
공공기관 평가 체계의 보완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정권에 따라 큰 폭으로 평가 기준을 흔들면서 공공기관의 정상적인 운영을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정부의 공공기관 경영 평가 기준은 재무상태 개선이나 호봉제 폐지처럼 장기적으로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경영 기반 조성 등 기본적 요소들에 집중돼야 한다.
정부가 평가 기준에 너무 자주 손을 대면 공공기관들은 단기 성과에 치중하고 장기 계획에는 소홀해져 방만 경영의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는 모두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올 것임을 당국은 기억해야 한다.
이건혁 경제부 기자 g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