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풍 같은 질주였다.
후반 추가시간 5분 44초. 주세종이 한국의 오른쪽 페널티 지역 앞 6m 지점에서 공격에 가담한 독일 골키퍼 마누엘 노이어의 공을 빼앗은 뒤 독일 골문을 향해 길게 찼다. 공은 선수들의 머리 위로 긴 포물선을 그리며 독일 골문 쪽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하프라인 근처에서 공의 궤적을 바라본 손흥민의 전력 질주가 시작됐다. 경기 종료 직전 모두가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지만 손흥민의 스피드는 폭발적이었다. 숨 막히는 질주는 관중의 함성 속에 골로 마무리됐다. 이날 경기의 하이라이트였다. 약 50m를 달린 뒤 골을 터뜨리는 순간 국제축구연맹(FIFA) TV 해설자는 “환상적 움직임을 보여준 손흥민이 독일의 꿈을 산산조각 내버렸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멕시코전에서 강력한 중거리포로 골을 넣은 데 이어 대회 2호골을 터뜨린 손흥민은 월드컵 통산 3호골로 ‘레전드’ 박지성, 안정환(이상 3골)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이 골이 ‘독일의 조기 탈락을 선고했다’고 표현했다. 코트디부아르의 축구 영웅 디디에 드로그바는 “환상적이다. 손흥민의 플레이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고 극찬했다. 손흥민의 소속팀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의 홈페이지에는 “손흥민이 한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승리에 쐐기를 박았다”는 내용이 등장했다.
경기 후 골 상황에 대해 손흥민은 “역습을 노리고 있었다. 세종이 형이 (노이어의) 볼을 빼앗은 뒤 내게 줬는데 그 패스가 워낙 좋았다. 잘 빼앗아서 잘 줬다. 난 골키퍼도 없는 데 넣기만 하면 됐다”고 말했다.

자신을 중심으로 팀을 운용한 신태용 감독에 대해서는 “내가 감독님을 잘 안다. 아버지 같은 분”이라고 했다. 그는 “내게 거는 기대와 믿음이 항상 많았는데 부응하지 못해서 죄송한 것도 사실이다”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수비수 2명 이상이 마크했음에도 한국 선수 중 가장 많은 5개의 슈팅을 기록했다. 이날 손흥민이 기록한 활동량은 1만383m. 독일의 공격 전개를 막기 위해 최전방에서부터 부지런히 압박을 가했다. 그만큼 헌신했다.
경기를 앞두고 조별리그 2경기에서 2패를 떠안은 한국의 분위기는 어두웠다. ‘세계 최강’과의 일전을 앞두고 설상가상 주장 기성용의 부상까지 겹쳤다.
이날 주장으로 나선 손흥민의 골 세리머니는 주장 완장에 키스하는 것이었다. 그는 “내가 주장 완장을 달았지만 성용이 형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경기에 나선 선수와 안 나선 선수 모두에게 고맙다고 했다.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이대로 돌아갈 순 없다는 말도 했다. 선수들도 운동장에서 다 쏟아붓자는 말도 했다. 선수들의 의지가 강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손흥민의 모습에 앞으로 손흥민이 명실상부한 대표팀의 주장으로 ‘캡틴 손’ 시대를 이끌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구자철은 “손흥민이 자신의 재능을 그라운드 위에서 꾸준히 보여주는 동시에 기성용 등 그동안 대표팀을 이끌었던 주장들의 장점을 잘 받아들이면 좋은 주장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카잔=정윤철 trigger@donga.com / 김배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