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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원숭이에서 달팽이로… 소주병 모델은 왜 바뀌었을까

입력 | 2018-06-30 03:00:00

◇일상과 감각의 한국디자인 문화사/조현신 지음/340쪽·2만 원·글항아리




[1]198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자동차 ‘엑셀’. [2]한국 최초의 라면인 삼양라면. [3]보급형 전화기의 효시인 ‘체신 1호’ 전화기. 글항아리 제공

흔히 디자인을 다룬 책이라면 감각적이거나 아름다운 작품들이 수록됐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 책에선 투박하고 오히려 촌스럽다고 여겨지는 사물들이 주인공이다. 라면, 화장품, 담배, 과자처럼 일상에서 친숙한 사물 15개의 디자인 역사를 짚어낸다. 저자는 “한국의 근대가 시작될 때의 어설픔, 경제 발전시기의 자신감, 현대로 오면서 강조되는 자유분방함 등이 우리 주변 사물들에 그대로 아로새겨져 있다”고 말한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술 ‘소주’. 소주병에도 독특한 디자인 코드가 숨겨져 있다. 195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소주 상표의 주인공은 원숭이였다. 사람과 생김새가 비슷하고, 술을 즐기는 기이한 짐승이라 여겨져 왔기 때문. 그러나 1955년 두꺼비가 원숭이의 자리를 차지한다. 속임수와 교활함을 상징하는 원숭이 대신 은혜를 갚을 줄 아는 ‘떡두꺼비’가 더 인기를 끈 것. 2000년대 들어 알코올 도수가 낮아지고,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대나무와 달팽이가 두꺼비를 밀어내고, 소주의 대표선수로 활동 중이다.

자동차 외관에도 시대상이 투영돼 있다. 1980년대 ‘마이카 시대’ 출발을 상징했던 엑셀, 르망, 프라이드 등의 소형차들은 군사정권이라는 당대 상황을 반영하듯 각진 세단형의 디자인을 벗어나지 못했다. 반면 1990년대 중산층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쏘나타와 아반떼는 부드러운 미소를 형상화한 램프와 매끄러운 곡선 등이 강조됐다. 외환위기 직전의 풍요로운 사회 분위기가 배어있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한국 사회에서 디자인의 가치가 부각되지 못한 것은 서구와 일본의 문물을 급격하게 받아들이면서 ‘모방’이 성행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최초의 보급형 전화기인 ‘체신 1호’는 미국의 AT&T의 302 전화기를 그대로 베꼈고, 1980년대까지 국내에서 생산된 담뱃갑은 대부분 일본의 인기 담배였던 ‘피스’를 따라 했다. 효율성의 가치만 따지다 정작 아름다움은 잊고 살았다는 것이다.

마치 민속박물관의 전시를 한 권의 책으로 만난 느낌을 준다. 매일 쓰는 일상의 사물들을 새롭게 보게 하는 신선한 자극을 불어넣는 책이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