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난민 강경파에 굴복
온건한 난민정책 탓에 정권 붕괴 위기에 처했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벼랑 끝에서 탈출할 것으로 보인다.
메르켈 총리는 지난달 30일 연정 파트너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16개 유럽연합(EU) 회원국이 유럽 내에서 이동한 난민들을 그들이 처음 도착한 EU 국가에 빠르게 보낼 수 있도록 하는 데 합의했다”고 밝혔다. 비록 28개 전체 회원국의 동의를 받진 못했지만 난민들이 다른 유럽 국가에 도착해 망명을 신청한 뒤 다시 독일로 들어오려는 시도를 막는 노력이 일정 부분 결실을 거둔 것이다. 메르켈 총리는 반난민 성향이 강한 기사당과의 연정을 유지하기 위해 ‘2차 이동(다른 유럽국→독일)’을 방지하는 합의를 이끌어냈어야 했다.
DPA통신에 따르면 메르켈 총리는 독일 국경에 난민 문제를 처리하는 대규모의 ‘정박 센터(anchor center)’를 설립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난민들의 1차 입국 국가 중 하나인 불가리아에 독일 경찰을 파견하고 그리스 국경에서 활동하는 EU 국경 보안군 프론텍스를 지원할 계획이다.
메르켈 총리는 지난달 30일 기사당을 이끌고 있는 호르스트 제호퍼 내무장관과 만나 연정 유지 협상에 돌입했다. 제호퍼 장관의 측근인 마르쿠스 죄더 바이에른주 총리가 “메르켈 총리의 합의는 옳은 방향”이라고 환영의 뜻을 나타내는 등 기사당이 연정 유지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난민의 천사’ 메르켈 총리마저 유럽 밖 난민 통제 강화에 찬성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최근 유럽 내 반난민 정서는 강했다. 극한 대립으로 치닫던 EU가 지난달 29일 끝난 정상회의에서 힘겹게 합의에 이른 것도 일단 유럽으로 들어오는 난민을 막아야 한다는 위기감이 컸기 때문이다.
EU 정상들은 난민의 입국을 어렵게 하고, 출국을 쉽게 하는 방안에 합의했다. EU 국경 수비를 강화하는 한편 난민 소속 국가를 지원해 난민의 입국을 줄이기로 했다. 또 각국이 ‘난민 통제센터’를 꾸려 난민 자격 심사부터 추방까지 절차를 신속하게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이해관계가 다른 유럽 각국은 명분을 챙겼다. 난민들의 관문인 지중해 국가들은 유럽 국가로부터 추가 지원을 이끌어냈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EU가 그리스 에게해 5개 섬에 재정 지원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체코 헝가리 등 동유럽 국가들은 “추가 난민 할당제 도입을 막았다”며 기뻐했고, 내륙 국가들은 ‘2차 이동’을 막기로 하면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