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수사 첫 타깃 ‘변협 사찰’
○ 변협에 대한 보복 기획과 실행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1부(부장검사 신자용)는 지난달 29일 하 전 회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10시간 동안 조사했다. 판사 뒷조사 의혹을 처음 제기한 이탄희 판사도 지난주 조사했다. 이에 앞서 검찰은 26일 대법원 특별조사단으로부터 받은 문건 410건 중 10건에 ‘변협 압박방안 검토’ ‘변협 대응방안 검토’ ‘변협 회장 관련 대응방안’ 등 하 전 회장 개인과 변협을 압박하는 내용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문건은 건당 8∼10쪽으로 구성됐으며 문건 작성자는 차장, 기획조정실, 사법정책실, 사법지원실 등 법원행정처 주요 국실로 기재돼 있었다.
○ “A 기자 이용”… 문건에 3, 4차례 등장
검찰은 법원행정처가 보복 조치를 기획한 뒤 실행했다고 보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법원행정처는 법원전산망으로 하 전 회장의 수임 명세를 전수조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 전 회장 수임 명세를 국세청에 통보해 탈세 정황을 살펴보는 방안 등도 등장한다. 2016년 11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국이 하 전 회장을 세무조사한 점 등이 문건 내용과 관련 있는지도 검찰은 수사 중이다.
문건에는 하 전 회장 수임 명세와 관련해 ‘○○○ 기자 등을 이용해 이미지 손상’ ‘이미지 타격을 가하기 위해 언론을 동원하고…’ 등의 표현이 3, 4차례 등장한다. 중앙 일간지 A 기자는 2015년 5월경 하 전 회장이 취임 전 수임 사건을 변협 사무차장에게 맡겼다는 취지의 기사를 썼다. 하 전 회장은 “당시에도 취재한 게 아니라 누군가로부터 정보를 받았다고 생각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건에는 변협과 함께하는 행사에 대법원장이 불참하고, 변협 산하 법률구조재단에 대한 예산 지원을 대폭 줄이는 등 구체적인 변협 압박 사례가 담겼다. 하 전 회장의 건물 뒷조사, 2016년 총선 야당 후보 출마 가능성 등도 언급됐다.
검찰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 박 정부의 이른바 ‘블랙리스트’ 판결 사례를 집중적으로 분석해 이미 법리 검토를 끝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대법원 자체 조사 때 큰 논란이 됐던 이른바 진보 성향 판사의 뒷조사 문건이 아닌 변협에 대한 대법원의 보복 조치를 검찰은 주요 수사 타깃으로 삼았다. 이는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변협 관련 문건 내용 가운데 상당수가 실행됐다는 점 때문이다. 직권남용은 위법 행위에 착수했지만 끝내지 못한 미수범은 처벌하지 않는다는 점 등을 고려한 것으로 분석된다. 검찰은 직권남용 외에도 재산과 수임 명세 뒷조사 과정에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 적용도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김현 변협 회장 등 현 집행부는 문건에 적힌 내용의 실행 여부를 자체적으로 조사한 뒤 이번 주 안으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을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
황형준 constant25@donga.com·이호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