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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시간, 직원이 알아서”… 기업들 선택근로제 도입 확산

입력 | 2018-07-02 03:00:00

[주52시간제 시작]주52시간제로 바뀐 직장 풍경




백화점 “개장시간 늦춥니다”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 첫날인 1일, 서울 시내 한 백화점의 출입문에 개점시간이 기존보다 30분 늦춰졌다는 내용의 안내문이 붙어 있다. 유통업계는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의 영업시간을 단축하거나 직원들의 퇴근시간을 앞당기는 등 대응책을 마련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SK텔레콤에 다니는 A 부장은 금요일이던 지난달 29일 퇴근 전 ‘7월 1∼14일 근무계획’을 사내 시스템에 입력했다. 이 회사는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에 앞서 4월부터 2주에 80시간 범위 안에서 근무계획을 세우는 자율적 선택근무제를 도입했다.

A 부장은 “매주 금요일에 다음 2주간 요일별 근무시간을 본인이 입력하면 된다”며 “급한 당직이나 야근 등은 수정 입력할 수 있고 2주 근무가 끝나는 시점에 최종 확정하는 방식”이라고 했다.

1일 본격 도입된 주 52시간 근로제는 한국 직장인들의 출퇴근 문화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늦어도 오전 9시까지는 모두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하는 현재의 출근제도로는 주 52시간 내로 근무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주요 기업마다 자율출퇴근제를 신설하거나 강화하고 있다.

○ 자율출퇴근 확산, 사무공간도 혁신

효성그룹은 일주일 단위로 다음 주 출근계획을 세워 보고하도록 했다. 만약 월요일 불가피한 야근계획이 잡혀 있다면 화요일 늦은 출근을 선택하면 된다. 아시아나항공도 한 달 치 출퇴근계획을 미리 전산시스템에 올리도록 했다. 사내 전화 액정 창에도 해당 직원의 출퇴근 예정시간이 표시돼 서로 업무나 소통에 차질이 없도록 준비했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직원 본인이 2시간 단위로 직접 신청해야 지급되던 초과근무수당을 1일부터 10분 단위로 사무실 출입기록 등에 따라 자동 지급되도록 시스템을 개편했다. 이전까진 통상 1시간 반을 잔업하면 30분 더 버티다 퇴근했는데, 이젠 곧장 퇴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개발직과 사무직을 대상으로는 출퇴근시간과 근로시간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선택적 근로시간제’와 ‘재량근로제’를 도입해 각자 최대 주 52시간 내에서 출근시간을 조정하도록 했다. 전날 야근을 했다면 다음 날엔 정오 이후 출근하는 식이다.

현대차도 오전 10시∼오후 4시를 집중 근무시간으로 정하고, 부서별로 출퇴근시간은 경우에 따라 각각 달리 하기로 했다. 전날 불가피하게 야근이 길어지거나 해서 주 52시간 근무가 불가능할 경우 부서장과 상의해 출퇴근시간을 조정하도록 했다.

자율출퇴근제가 본격화됨에 따라 기존 사무실 풍경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SK그룹은 출퇴근 방식의 변화에 따라 일하는 공간 자체도 바꿔 보자는 취지로 계열사별로 ‘공유좌석제’를 도입하고 있다. 개인 책상을 없애고 그날의 업무와 출퇴근 상황에 맞춰 원하는 층과 자리에 앉아 근무하는 제도다. SK하이닉스, SK C&C 등 정보기술(IT) 계열사들부터 시작한 뒤 이르면 다음 달 말부터 에너지 계열사들도 이를 도입하기로 했다.

○ 접대시간 인정 들쑥날쑥, 투잡 편법도

업무상 접대는 같은 회사 내에서도 계열사별로, 팀별로 제각각 상황이 다르다 보니 논란이 가장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부분이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회식은 근로시간으로 인정되지 않지만 업무상 접대는 사용자의 지시 및 승인에 따른 경우에 인정이 가능하다.

GS건설은 영업, 홍보, 대관 등 외부 접촉이 잦은 보직을 중심으로 외부 인사와의 ‘저녁식사 2시간’을 업무로 인정하기로 했다. 만약 이 회사 A 과장이 거래처 사람과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 3시간 동안 저녁식사를 함께한다면, 2시간은 A 과장의 근무시간이고 1시간은 근무시간이 아닌 셈이다. GS건설 측은 “외부 식사비를 3만 원으로 제한한 ‘부정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을 지킬 수 있는 식사시간을 2시간으로 보고 정한 기준”이라고 설명했다.

효성은 업무상 접대는 최대 3시간까지 인정하기로 했고, SK E&S는 2시간까지만 허용한다. 재계 관계자는 “같은 시간 동안 식사를 하더라도 A회사 직원은 근무 중이고 B회사 직원은 자기 시간을 희생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질 거 같다”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늦어도 오후 9시면 급하게 자리를 파해야 하는 셈이니 통금시간이 부활했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고 했다.

아직까지 내부 지침을 정하지 못한 회사도 적지 않다. 한화그룹은 “거래처와의 약속이나 해외 출장 시 근로 인정시간 등 세부안은 아직 검토 중”이라며 “정부가 6개월의 처벌 유예기간을 둠에 따라 현장 의견을 좀더 취합해 업무 지침을 확정할 예정”이라고 했다. 현대차도 외부 업무식사가 많은 부서를 중심으로 대안을 짜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가급적 저녁 약속은 점심으로 돌리고, 저녁이 불가피하다면 일찍 퇴근하거나 늦게 출근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상당수 건설업체는 해외 건설현장에서 어떻게 주 52시간제를 지켜야 할지 고심하고 있다. 그동안 해외 근무자들에게 4개월에 한 차례 최대 15일가량 주던 휴가를 3개월에 한 차례로 늘리는 방안 등이 거론 중이다. 휴가를 늘려 근로시간을 맞추는 것이지만 사실 임시 대책에 가깝다. 한 대형 건설사 임원은 “해외 현장마다 공사 상황이 달라 일률적으로 근로시간을 적용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그나마 국내 건설사의 해외 현장이 3, 4년 사이 급감해 다행이라는 자조가 나오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일반 직원들 사이에선 주 52시간제 때문에 사측의 관리 감독이 강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 대기업 차장은 “근무시간도 사전에 상사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고, 접대 자리도 상사의 지시가 있어야만 인정을 받는 구조이다 보니 상사와의 관계에 따라 근로시간 인정 여부가 달라질까 봐 걱정”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편법도 등장했다. 한 대기업은 야근 및 주말 근무가 많은 임원 기사들을 대리기사 운전업체에 이중으로 고용시킨 뒤 52시간이 넘는 부분에 대한 월급은 대리기사 업체가 지급하도록 했다.

동종 업체 간 인력 교차 활용을 추진하는 곳도 있다. 주 4일 정도만 원래 공장에서 정규직원으로 일하고 주말엔 다른 업체에서 아르바이트를 뛰는 방식이다. 초과 근로를 통해 연봉을 높여온 공장 근로자들도 환영하고, 회사로서도 주 52시간제 규정을 피해갈 수 있는 묘안으로 떠올랐다.

김지현 jhk85@donga.com·박재명·김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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