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2일 러시아 모스크바 한러대화 제 4차 KRD 포럼 중 ‘정치국제분과’ 참관기
‘한러대화 제 4차 KRD 포럼’ 참가자들이 6개 분야로 나눠 토의를 갖기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블라디미르 미하일로비치 필립포프 민족우호대 총장, 발레리 알렉산드로비치 골루베프 가스프롬 이사회 부회장, 비탈리 니키티치 이그나텐코 세계러시아언론협회 회장(전 이타르타스 통신사 사장), 세르게이 블라디미로비치 젤레즈냑 하원의원, 니콜라이 크로파체프 상트페테르부르크대 총장, 이규형 한러대화 한국측 조정위원장, 박영선 더불어 민주당 의원, 유종하 전 외교부 장관, 이상돈 바른미래당 의원, 김영희 전 중앙일보 상임고문, 이시형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 정규상 성균관대 총장
‘러시아는 대북 제재 해제를 먼저 할 것이 아니라 북한 변화에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한러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경제 협력의 이행은 양국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내실화하고 한반도 평화체제 공고히 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모스크바 크렘린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22일 크렘린 북쪽으로 멀지 않은 ‘월드 트레이드 센터’. 문 대통령 방러에 맞춰 열린 ‘한러대화 제4차 KRD 포럼’에서 만난 양국 학자와 전직 관료, 외교관 등 전문가들이 북한 비핵화의 전망과 한-러 협력 방안 등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왼쪽부터 박선영 더불어 민주당, 이상돈 바른미래당 의원, 이시형 국제교류재단 이사장, 알렉산드르 파노프 전 주한 대사
많은 러시아 고위 인사들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의지 표명으로 촉발된 한반도 격변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지 알 수 있는 기회가 됐다. 한반도 비핵화 과정 및 그 후 동북아 평화와 협력에 동반자가 되어야 할 러시아를 좀 더 알아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 계기도 됐다.
● “동북아에 다층적이고 오랜 역사적 긴장 구조 있다” 공감
세르게이 쿠르바노프 상트페테르부르크대 교수
한국외대 홍완석 교수
최재근 전 주 상트페테르부르크 총영사
● 판문점과 싱가포르 회담에 대한 엇갈리는 평가
글레브 이바셴초프 전 주한 대사
장덕준 국민대 교수
알렉산드르 줴빈 극동연구소 한국학센터 소장
게오르기 쿠나제 전 주한 대사는 “싱가포르 회담이 이틀간 진행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하루 만에 끝난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는 지금까지 미국의 어떤 대통령은 하지 못했던 한반도 문제를 해결했다고 자랑하지만 실질적으로 한반도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이 마련된 것은 아니며 미국은 북한을 위한 체제 보장 장치를 마련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윤창용 가톨릭관동대 교수
● “한반도 등 동북아 평화체제에 러시아의 역할 필수”
줴빈 소장은 “러시아는 한반도에서 동맹 구조가 형성에 것을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며 “7500만 인구를 가진 통일 한국과 국경을 맞대는 것이 마냥 좋지 만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만약 통일 한국에 미군이 그대로 주둔한다면 러시아는 이를 미국의 글로벌 미사일방어체계(MD) 체제 구축 및 아시아판 NATO 구축 노력으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바셴초프 전 대사는 “한반도 비핵화 등의 문제는 미국이 단독적으로 문제 해결하지 못하며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중국과 러시아 참여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덕준 국민대 교수도 “현재 미국과 중국 사이의 무역 전쟁이 발생하고 있어 북핵 문제에서 러시아의 중재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며 “한러 간 긴밀한 전략적 소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북핵 문제 해결 과정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및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체제 구축에서 러시아의 역할이 중요해질 것이라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21일 러시아 하원 두마에서 가진 연설에서 “한반도에 평화체제가 구축되면 남북 경제협력이 본격화 될 것이며, 러시아와의 3각 협력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홍완석 교수는 “러시아가 한국전쟁의 휴전협정 체결 당사자가 아니어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기가 어렵다”며 “그럼에도 북핵 6자회담이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체제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러시아를 반드시 참여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이는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 보장을 위한 다자안보 협력체 창설을 더욱 용이하게 할 뿐 아니라 북한의 개혁 개방과 통일 비용을 줄이는데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게오르기 쿠나제 전 주한 대사
● 김정은의 비핵화 진정성 논란
엄구호 한양대 교수
일리야 디야츠코프 모스크바국제관계대 조교수
엄 교수는 토론 후반부 보충 발언에서 “비핵화가 어렵다고 한 러시아 지인들의 말은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에 단기간에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가 어렵다는 뜻이었다”며 “장기적으로 비핵화는 되겠지만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한-러 간 협력이 필요하다는 점에 방점을 두었다”고 덧붙였다.
쿠나제 전 대사는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비핵화 프로세스가 원활하게 이뤄질 것이라고 말하지만 시간을 두고 봐야할 것”이라며 “제2차 북미정상 회담의 개최 여부도 아직 미지수”라고 신중한 입장을 나타냈다. 쿠나제 전 대사는 “비핵화 프로세스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북한의 의중도 불확실하다”며 “판문점 선언문은 상당히 의미있는 문건이지만 북한 입장에서는 생존이 문제여서 앞으로 어떠한 시나리오가 전개될지 생각해보면 매우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르게이 안드류신 상트페테르부르크대 교수
● ‘동북아 다자 안보협력체 구성에 동의하지만 이견도’
한반도 비핵화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주변국들이 두루 참여하는 다자 안보체제가 필요하다는 점에는 공감했으나 ‘외부 세력’ 문제 등에서 이견을 나타냈다.
홍완석 교수는 “동북아에서 다자안보체제를 창설하는 문제에 대해 한국과 러시아는 이해가 전적으로 일치한다”며 “특히 역내에서 다자 협력틀이 필요한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한 것이 북핵 문제였고 6자 회담도 이런 분위기에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이바셴초프 전 대사는 “동북아 평화정착을 위해서는 남북한과 러시아 중국 일본 몽골 미국 등이 참여하는 다자협력 체제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줴빈 소장은 다만 “러시아는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남북 통일을 전적으로 지지하지만 남북 주도 하에 이뤄져야 하며 외부 세력의 개입은 절대 반대한다”며 “한반도에서 어떠한 형태의 동맹 구조가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쿠나제 전 대사는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 북한은 핵비확산조약(NPT)에 복귀하고 재래식 무기를 휴전선에서 후퇴시켜야 하며 한미는 연합 군사훈련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때 쿠나제 전 대사는 “한국에 미군이 지속적으로 주둔한다면 북한에 중국군이 주둔하는 제한적 권리가 없느냐”고 말했다.
변대호 전 주크로아티아 대사
백주현 전 카자흐스탄 대사는 “한국 정부의 북방 정책 모토는 머리 위의 안보 불안 해소를 위해 베이징(北京)을 거쳐 모스크바로 가는 것이었다”며 “이제 북중러와 한 덩어리가 되어 한미일과 대항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30년 전 생각”이라고 말했다.
● ‘한-러, 보다 긴밀한 협력으로 평화와 발전을 찾아서’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나타내면서 극동과 북한을 아우르는 한-러 협력 가능성도 높아졌다. 이를 계기로 한-러 관계를 한 단계 높여야 한다는 점에서는 양측 전문가들이 입을 모았다.
고재남 국립외교원 교수
고 교수는 “푸틴 대통령 집권 4기를 맞아 찾아온 한반도 비핵화 움직임은 매우 긍정적인 상황”이라며 “러시아가 한반도 평화 정책 프로세스에 어떻게 참여하도록 유도할 것인가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극동 개발 등 경제적 협력을 적극 원하는 만큼 한국은 보다 적극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백주현 전 카자흐스탄 대사(왼쪽)와 알렉산더 미나예프 전 주북한 러시아대사관 참사관
김영웅 러시아과학원 산하 극동문제연구소 소장
김 소장은 “중국을 제외한 모든 사회주의 국가는 중산층이 두터워지면 자본주의화되었다”며 “북한 주민도 상당히 부유해지면 스스로 자유 민주주의를 위해서 투쟁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소장은 “북한에 대한 어떠한 제재도 북한은 견딜 수 있기 때문에 한국은 북한의 변화를 기다려야 하는데 기다리지 못하는 것 같다”며 “북한이 경제적으로 부유해지면 핵무기도 자연스럽게 내려놓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기 한양대 교수
손성환 한국외대 초빙교수
손 교수는 “어설픈 개혁 개방이 전체주의 정권에 위협을 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역사적인 사례가 있다”며 개혁 개방 과정에서 북한의 체제보장도 내부적으로 위협을 받을 수 있음을 시사했다.
신범식 서울대 교수
모스크바=구자룡기자 bon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