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장현수.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지난달 24일(한국시간) 러시아 로스토프나도누에서 열린 멕시코와의 2018러시아월드컵 조별리그 F조 2차전(1-2 패)을 마치고 베이스캠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온 태극전사들은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특히 페널티킥 실점으로 이어진 핸드볼 파울을 범한 베테랑 수비수 장현수(27·FC도쿄)의 심경은 더욱 복잡했다.
“축구 인생에 대해 정말 깊이 고민했다.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한 건 처음이었다. 한 숨도 못 잤다. 무서웠다. 나 하나로 엄청나게 노력한 동료들에게 피해를 줬다. ‘더 이상 피해를 입히면 안 되겠다’는 생각만 했다.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내 월드컵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동료들이 있었다. 누구도 그를 탓하지도, 손가락질하지도 않았다. 기성용(29·뉴캐슬)과 구자철(29·아우크스부르크)은 “축구는 팀 스포츠다. 한 명의 실수가 패인이 될 수 없다. 우리 모두의 잘못”이라며 다독였다.
사흘 뒤 이어진 독일과의 조별리그 최종전(3차전). 카잔 아레나에 울린 애국가는 어느 때보다 특별했고, 소름 돋았다. 사력을 다한 96분. 거의 대부분 11㎞ 이상 뛰었다. 넘어져도 금세 일어섰고, 다시 달렸다. 그렇게 ‘카잔의 기적’이 이뤄졌다.
2일 서울 청담동의 한 카페에서 스포츠동아와 만난 장현수는 “난 멕시코전에서 끝났지만 다시 살아났다. 위대한 팀원들과 팀이 아니었다면 난 회생 불가능한 완전히 죽은 선수가 돼 있을 것”이라고 고마움을 전했다.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장현수.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그전에 난 모두의 꿈을 무너트릴 뻔 했다. 미안함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독일전에서 코칭스태프가 출전시키더라도 뛸 수 없음을 알리려 했다. 월드컵이 끝났다 싶었다. 그런데 점심식사 후 미팅이 있었다. ‘1% 희망이 있다. 드라마 요건이 충족됐다. 다시 하자!’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더 이상 잃을 것도 떨어질 곳도 없는데….(신태용) 감독님이 ‘뛸 수 있겠냐’고 하셨을 때 너무 감사했다. 신뢰가 날 붙잡아줬다.”
- 수비형 미드필더로 희망을 다시 찾았다.
“평소 이미지 트레이닝을 많이 한다. 특히 경기 직전에는 머리 속으로 역할을 그린다. 독일전은 달랐다. 그저 죽자는 생각이었다. 호흡이 멈출 때까지 뛰자는 마음 뿐이었다. 포백과 파이브백을 두루 오가는 포어-리베로 임무였는데 별 생각이 없었다. 다행히 전술적인 부분을 몸이 기억하더라. 어떻게 뛰었는지 모르겠다.”
- 멕시코전 끝난 뒤 동료들이 어떤 이야기를 했나.
“(구)자철이형이 메시지를 보내줬다. (오)반석이형도 새벽에 메시지를 보냈다. (기)성용이형과 (김)신욱이형도 직접 내 방에 들어와 한 시간 가량 대화했다. 성용이형이 이런 말을 해줬다. ‘고개 들자. 당당히 그라운드에 들어가자! 지금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지 널 존중하겠지만 최대한 행복하게 축구하고, 행복했으면 한다.’ 뭉클했다. 날 신뢰한다는 의미였으니. 마지막에 웃을 수 있어 다행스럽다.”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장현수.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생애 첫 월드컵은 어떻게 기억될까.
“비난하는 분들 못지않게 응원해주는 분들도 많았다. 한 명이라도 상관없다. 그 분을 행복하게 해드렸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스스로도 많이 성장했다. 실수를 통해 배웠다면 그것 또한 성장이다. 월드컵은 정말 평소의 A매치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라커룸을 나와 통로에서 입장을 기다리며 엄청난 긴장감을 느꼈다. 드디어 월드컵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벅찼다. 이 순간을 향해 고생했던 매 순간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스웨덴과 1차전(0-1)은 정말 아쉬웠고 미안했다. 다행히 팀은 흔들림 없이 똘똘 뭉쳐있었다.”
- 귀국길에서 날계란을 던진 이들도 있었다.
“대표팀이 귀국한 날은 마침 친형 생일이었다. 공항에서 계란이 날아들었는데, 제 가방에 맞았다. 던진 분이 날 겨냥했는지 확인할 수 없고, 그 분의 마음을 모르는 바도 아니지만 살며시 서글프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제 활짝 웃어요’, ‘수고 많았어요’, ‘고개 들어요’라는 격려의 말에 다시 힘을 얻었다.”
- 다음 목표는 무엇인가.
“행복한 축구를 하고 싶다. 돈? 명예? 다른 이들을 위한 희망? 그런데 그간 정작 내 자신의 행복은 찾지 못했다. 축구를 하는 이유에 대해 무수히 많은 답을 해봤지만 스스로 행복이란 단어를 앞세운 적은 없었다. 어디서든 내가 행복할 수 있다면 주변 모두에게도 행복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행복하기 위해 축구를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