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실종에 무너지는 경제]<2> 입국장 면세점 법안 6차례 무산
국내에서 구입한 면세품을 해외로 가지고 나가야 하는 출국장 면세점에 대한 소비자 불편이 커지면서 ‘입국장 면세점 설치’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일 인천공항공사에 따르면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2만여 명의 공항 이용객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전체의 84%가 입국장 면세점 설치에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 면세점을 이용하는 한국인들을 국내 소비로 끌어와야 나라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정치권에서도 관련 법 개정 움직임이 6차례나 있었지만 관련 업계와 정부부처 등의 반대 움직임에 정치권이 소극적으로 대처하면서 번번이 좌절됐다. 이 때문에 정부와 정치권이 문제를 공론화해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법안 발의만 6차례… 번번이 법안 상정 무산
법안 발의 때마다 발목을 잡은 건 관련 업계와 정부·정치권이었다. 주무 부처인 기획재정부와 관세청의 반발이 특히 심했다. 면세품의 해외 사용을 전제로 세금을 면제해 주고 있는데 입국장 면세점을 도입하면 ‘소비지 과세 원칙’에 어긋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수익 악화를 우려한 관련 업계의 반발도 심했다.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등 기내면세점을 운영하고 있는 항공사들은 입국장 면세점 도입을 반대하고 있다. 출국장 면세점을 운영하는 대기업들도 ‘경쟁이 심화된다’며 반대하고 있다.
관세법 개정 등 관련 법안은 2003년부터 여섯 차례나 발의됐지만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당시 법안을 주도했던 안효대 전 새누리당 의원은 “소비자 편의와 국제적 트렌드 등에 맞춰 관련 법안을 발의했지만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면서 “정부 반대로 힘이 실리지 못했고 관련 업계의 정치 로비도 상당 부분 영향을 끼친 것 같다”고 말했다.
2010년 관련 법안 통과를 주장했던 김성태 자유한국당 대표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당시 ‘입국장 면세점 이용하고 싶어도 못하는 이유’라는 보도자료를 통해 “입국장 내 면세점 설치로 기내 (면세품) 판매량의 저하가 예상되는 항공사들이 입국장 면세점 설치를 막고 있다”면서 “연간 기내 판매 3000억 원에 달하는 막대한 수익금을 지키기 위한 국내 항공사들의 치열한 로비 때문에 입국장 면세점 설치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당시 입국장 면세점 도입 법안 발의에는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과 한병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도 뜻을 같이했다.
중국 일본 베트남 등 주변국들은 앞다퉈 입국장 면세점을 도입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운영 중인 입국장 면세점 중 약 40%가 아시아 27개국에 있다. 소비자 편익과 해외 면세점 이용객의 국내 유인 등을 생각하면 입국장 면세점 도입에 대해 재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인천공항공사 관계자는 “통상 술 담배 화장품 등은 해외 여행객들이 국내로 들여오는 선물이나 기념품으로 인식되는 만큼 이런 품목들은 입국장 면세점에서 취급하는 게 최근 흐름과 맞다”고 주장했다. 인천공항공사는 입국장 면세점이 허용되더라도 값비싼 명품이 아닌 주류나 담배 등 비교적 저가 제품만 취급하겠다는 입장이다.
관세청은 “시내 및 출국장 면세점 이용객의 77%가 외국인”이라며 “내국인이 국내 면세점에서 산 물건을 다시 국내로 들여오는 경우는 일부에 불과하다”고 입국장 면세점 도입에 반대하고 있다.
강승현 byhuman@donga.com·강성휘·박재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