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시간제 시작]주 52시간제 답 못찾는 병원들
○ 과로가 일상인 의료 현장, 주 52시간 충격 커
주 52시간제 시행을 맞은 의료 현장 곳곳에서 예상치 못한 혼란이 나타나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조사에 따르면 간호사와 방사선사 등 보건업 종사자 중 주 52시간 초과 근로자 비율은 10.8%에 이를 정도로 장시간 근로가 일상화돼 있다. 이런 상태에서 준비 없이 주 52시간제를 맞으니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노사가 특례 조항을 적용하기로 합의했을 때만 가능한 얘기다. 병원 측이 근로자 대표와 서면으로 합의하지 않으면 의사와 간호사도 다른 업종과 똑같이 주 52시간제를 지켜야 한다. 현재 주 52시간제가 우선 적용된 근로자 300인 이상 중대형 종합병원 대다수는 아직 노사 합의를 이루지 못한 상태다. 보건의료노조는 “특례 조항을 적용하면 사실상 ‘무제한 근로’가 가능해진다”며 특례 적용을 거부하고 있다.
○ 구인난에 시달리는 응급환자 부서
병원 내에서 주 52시간제 적용으로 혼란이 큰 대표적 장소는 24시간 진료 체계를 유지해야 하는 응급실과 권역외상센터다. 한 권역외상센터에서 응급수술과 헬기 출동을 전담하는 간호사 전모 씨(37·여)는 하루 13시간씩 나흘 일하고 이틀 쉬는 근무 일정을 반복해 주 61시간 이상 일한다. 전 씨는 “지금보다 근무시간을 줄이면 간호사 한 명당 한꺼번에 돌봐야 할 중증외상환자가 현재의 2, 3명에서 4, 5명으로 늘어난다”며 “사실상 환자를 살리는 걸 포기하라는 얘기”라고 말했다.
새 일손을 뽑으면 해결될 일이지만 사람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다. 상당수 권역외상센터가 지방에 있는 데다 업무 강도가 세기로 유명해 구직자가 기피하기 때문이다.
○ ‘11시간 연속 휴식’ 조항도 복병
노사가 특례업종 적용에 합의해 주 52시간제 적용을 피하더라도 9월부터 시행될 ‘연속 11시간 휴식’ 조항이 복병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자정에 퇴근하면 오전 11시까지는 반드시 쉬게 하는 식으로 최소한의 휴식권을 보장하는 것으로 특례업종에만 적용되는 조항이다. 이게 적용되면 의료진이 온콜(on-call·비상대기) 상태에 있다가 응급수술을 하는 일이 불가능해진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혈관이식외과에서 일하는 임상강사 박모 씨(37)는 “새벽에 응급 이식수술을 했다고 그날 예정돼 있는 정규 이식수술을 취소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서울의 한 대학병원은 아예 특례업종 적용을 포기했다. 연속 11시간 휴식보다는 주 52시간제를 지키는 게 차라리 쉬울 것 같다는 이유에서다.
조건희 becom@donga.com·유성열 기자·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