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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세 대신 전세금 받아 34억 가로챈 공인중개사

입력 | 2018-07-03 03:00:00

집주인 몰래 신혼부부 등 대상 사기… 13명 보증금 받아 유흥비 탕진
계약때 임대인-서류 확인해야




지난해 초 A 씨 부부는 서울 강남의 한 공인중개사사무소를 찾았다. 결혼 후 두 번째로 살게 될 전셋집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A 씨는 공인중개사 김모 씨(46)의 도움으로 집을 계약했다. 주인이 해외에 있어 김 씨가 모든 거래를 진행했다. “시세보다 싸다”는 그의 말에 A 씨는 서둘러 전세보증금 5억 원을 건넸다. 저축한 돈과 주변에서 빌린 돈까지 모은 것이다.

올 5월 A 씨는 공인중개사사무소 간판이 사라진 걸 발견했다. 김 씨 역시 전화를 받지 않았다. 확인 결과 김 씨는 월세로 나온 집을 전세로 속여 계약한 뒤 보증금을 챙겨 달아났다. 주인이 해외나 지방에 있어 거래를 완전히 위임한 점을 악용했다. 피해자는 A 씨를 비롯해 13명, 피해금액은 총 34억 원에 달한다. A 씨는 “전문성을 가진 공인중개사라 당연히 믿고 맡겼다가 전 재산을 날릴 처지”라고 말했다.

2일 서울 수서경찰서에 따르면 공인중개사 김 씨는 피해자 한 명당 약 1억∼5억 원의 전세보증금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김 씨는 이렇게 챙긴 돈의 대부분을 도박이나 유흥비로 탕진해 피해 보상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경찰은 김 씨를 사기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부동산 관련 법률을 잘 모르는 신혼부부나 사회초년생을 노린 일부 공인중개사사무소의 ‘가짜 거래’가 극성이다. 공인중개사만 믿고 계약서를 꼼꼼히 따지지 않거나 임대인을 직접 확인하지 않는 ‘빈틈’을 노린 것이다. 과거에는 무등록 공인중개사가 이런 범죄를 저질렀지만 최근에는 정식 공인중개사가 가담한 범죄도 나타나고 있다. 가짜 거래 수법도 갈수록 지능화하고 있다. 임차인이 임대인과 통화를 요구하면 공인중개사가 미리 고용한 제3자가 대신 전화를 받는 수법까지 동원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피해 예방을 위한 방법을 꼼꼼히 챙겨야 한다고 조언한다. 우선 임대인과 임차인이 직접 배석한 가운데 거래를 해야 안전하다고 조언한다. 부득이할 경우 최소한 양측이 전화 통화를 해 계약 내용을 재확인해야 한다.

계약서와 인감도장, 위임장 등 계약 서류도 꼼꼼히 따져야 한다. 경찰은 “시세보다 싸게 판다며 급하게 계약을 요구해 피해자가 서류 확인을 제대로 못하게 하는 수법을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증금을 공인중개사가 아닌 임대인 계좌에 직접 보내는 것도 사기 가능성을 줄이는 방법이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전문성을 가진 공인중개사가 마음먹고 속이려 한다면 일반인이 쉽게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적발 시 가중처벌 등을 내려야 같은 범죄가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