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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김유영]지지부진한 혁신성장, ‘격노’로 해결될 일인가

입력 | 2018-07-03 03:00:00


김유영 산업1부 차장

최근 청와대에서 열릴 예정이던 ‘제2차 규제혁신 점검회의’가 회의 시작 3시간 전에 전격 취소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규제개혁 부진에 격분하며 “답답하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예정된 회의를 당일 취소한 것은 지난해 5월 대통령 취임 후 처음이었다. 부처들은 이를 경고로 받아들이고 저마다 규제 완화 후속 조치에 나서고 있다. 대통령 제스처가 일단 ‘충격 요법’으로는 성공한 셈이다.

그런데 이게 능사일까. 관료들이 문제가 무엇인지 몰라서 해결 못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차량 공유 서비스 관련 규제만 봐도 그렇다. 한국은 한때 차량 공유 서비스 유망 국가로 관심을 받았었다. 신용카드 보급률이 워낙 높고 서울이 인구 1000만 명에 육박하는 ‘메가시티’로 꼽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력적인 인프라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인 투자처가 되지 못하고 있다. 선제 투자의 귀재인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중국 디디추싱, 동남아 그랩, 인도 올라캡스 등 각국 차량 공유 서비스 업체에 잇따라 투자했지만 유독 한국 업체는 빼놓았다. 카카오택시 등을 운영하는 카카오모빌리티에 대한 투자를 검토했지만 결국 접었다.

왜일까. 최근 카풀 서비스 스타트업 ‘풀러스’가 직원 70%를 감원하고 대표이사가 물러난 과정을 보면 알 수 있다. 초반엔 택시 운전사들이 반발해 출퇴근시간대(오전 5∼11시, 오후 5시∼오전 2시)에만 운영했다. 그러다 지난해 말 운영시간을 확대했더니 이번에는 운수업 면허권을 쥔 서울시가 풀러스를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자가용을 유상 운송용으로 불법 알선한다’는 요지였다. 27만여 명에 이르는 택시 운전기사들이 투표권을 행사하다 보니 이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택시업계와 규제 완화를 위한 토론을 하자고 했지만 택시업계가 불참해 토론이 무산됐고 그 사이 풀러스는 재정난을 겪었다. 스타트업 업계는 “검은 카르텔 앞에 젊은 혁신가들의 꿈이 무너졌다”고 안타까워했다.

‘표(票)퓰리즘’이나 ‘검은 카르텔’ 앞에서 좌절하는 건 차량 공유 스타트업뿐만이 아니다. 첨단 기술을 농업에 접목하는 스마트팜은 대기업들이 기술을 확보하고서도 농민 반대로 진출하지 못하고 있다. 인터넷은행은 대기업의 사금고화를 우려해 은산분리를 외치는 시민단체 등을 의식해 덩치를 못 키우고 있다. 바이오·헬스케어 스타트업도 의료계 기득권과 충돌해 원격의료조차 도입하지 못한 채 지지부진하다.

대통령 취임 후 1년 동안 적폐 청산 드라이브를 걸어 과거 정책을 부정하는데, 나중에 짊어질 책임 등을 우려해 소신 있게 나설 관료들이 있을 리 만무하다. 정치권도 매한가지다. 일자리 창출력이 높은 서비스 산업의 불합리한 규제를 없애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안은 여야 반대에 막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2012년 정부안이 제출된 뒤 7년째 계류 상태에 빠져 있다.

현재 취업자 수나 수출, 소비, 설비 등 각종 지표가 암울하기만 하다. 전문가들은 올해 3% 성장은 사실상 물 건너간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은 밥그릇 지키는 이익집단에, 진영 논리에 빠진 여야에 대통령이 ‘정치적인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시점이다.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혁신은 결국 리스크 테이킹(risk-taking)이고 ‘뭔가 새로운 것을 해보자’는 분위기가 중요한데 지금 기업들이 너무 위축돼 있어 혁신하기 쉽지 않은 분위기”라고 진단했다. 규제완화는 ‘친(親)기업, 친시장’을 원칙으로 하지만, 정부는 겉으로만 혁신성장을 외치면서 시장에는 시그널을 거꾸로 주고 있는 게 아닌지 되짚어 볼 일이다.
 
김유영 산업1부 차장 ab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