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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점유율 축구’ 족쇄 채운 ‘러시아 체력축구’

입력 | 2018-07-03 03:00:00

전력 열세 러시아, 뒷공간 겨냥
상대보다 9km 많은 146km 뛰며 결정타 노리는 전술로 대어 낚아




“러시아가 스페인의 티키타카(패스 축구)에 종말을 고(告)했다.”

1일 이번 대회 세 번째 16강전(러시아-스페인)이 연장전까지 무승부(1-1)에 이어 러시아의 승부차기 승리(4-3)로 끝나자 AP통신을 비롯한 각종 외신들의 평가는 한결같았다. 최근 10여 년간 주름잡았던 패스 중심의 스페인식 점유율 축구를 대체하는 축구계의 새 흐름이 감지된다는 반응이었다. 그 핵심은 ‘활동량’이다.

전력상 열세에 있던 러시아는 이날 5백(중앙 수비수3명+양 측면 수비)을 쓰는 대신 왕성한 움직임을 앞세워 스페인의 뒤쪽 공간을 노렸다. 러시아 대표팀이 연장전까지 뛴 거리는 146km. 스페인(137km)보다 무려 9km를 더 뛰었다. 여기에 거친 수비(19개 반칙)와 골키퍼 이고리 아킨페예프의 선방까지 가세하면서 상대에게 골을 안 주고 결정타를 노리는 전술을 활용했다. F조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한국이 독일을 꺾은 원동력도 상대보다 3km를 더 뛴 왕성한 활동량이었다.

이날 경기는 러시아의 노림수대로 흘러갔다. 전반 12분 수비수 세르게이 이그나셰비치가 자책골로 선제골을 내주긴 했지만, 전반 41분 장신 공격수 아르툠 주바가 페널티킥 골을 성공시켜 승부를 연장전까지 끌고 갔다. 이후 승부차기로 승리를 안았다. 러시아의 ‘체력 축구’가 스페인의 점유율 축구를 꺾은 셈이다. 이날 스페인은 슈팅 15개(러시아 4개), 유효 슈팅 9개(러시아 1개), 점유율 74%로 압도적인 경기를 펼치고도 고개를 떨궜다.

유로2008 우승 이후 스페인은 세계 축구 흐름을 주도했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 국제축구연맹(FIFA) 최하위 팀(70위)이지만 상대보다 더 많이 뛰며 승리를 챙기는 러시아의 ‘체력 축구’에 밀렸다.

스페인은 1934년 이후 84년간 이어져 온 ‘개최국 상대 무승 징크스’에 또다시 발목이 잡혔다. 스페인은 이날까지 월드컵에서 개최국을 5번 상대해 한 번도 승리하지 못했다. 이 경기에 앞서 개최국으로서 스페인에 승부차기 패배를 안겼던 팀이 2002 한일 월드컵 8강전에서의 한국이었다.

스페인은 그 이전에도 1934 이탈리아 월드컵 당시 개최국 이탈리아와의 두 번 대결(무승부에 이은 재경기)에서 1무 1패를 기록했다. 1950년엔 준결승전에서 개최국 브라질에 대패(1-6)했다.

한편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우승 당시 결승골을 넣었던 스페인의 간판스타 안드레스 이니에스타(34)는 이날 러시아전을 마친 뒤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2006년 러시아와의 평가전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렀던 이니에스타는 이날 러시아전을 끝으로 대표팀에서 물러나게 됐다. 스페인 티키타카의 한 축이었던 이니에스타의 은퇴와 더불어 스페인 황금시대도 저물고 있다.

김재형 monami@donga.com·임보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