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 열세 러시아, 뒷공간 겨냥 상대보다 9km 많은 146km 뛰며 결정타 노리는 전술로 대어 낚아
“러시아가 스페인의 티키타카(패스 축구)에 종말을 고(告)했다.”
1일 이번 대회 세 번째 16강전(러시아-스페인)이 연장전까지 무승부(1-1)에 이어 러시아의 승부차기 승리(4-3)로 끝나자 AP통신을 비롯한 각종 외신들의 평가는 한결같았다. 최근 10여 년간 주름잡았던 패스 중심의 스페인식 점유율 축구를 대체하는 축구계의 새 흐름이 감지된다는 반응이었다. 그 핵심은 ‘활동량’이다.
전력상 열세에 있던 러시아는 이날 5백(중앙 수비수3명+양 측면 수비)을 쓰는 대신 왕성한 움직임을 앞세워 스페인의 뒤쪽 공간을 노렸다. 러시아 대표팀이 연장전까지 뛴 거리는 146km. 스페인(137km)보다 무려 9km를 더 뛰었다. 여기에 거친 수비(19개 반칙)와 골키퍼 이고리 아킨페예프의 선방까지 가세하면서 상대에게 골을 안 주고 결정타를 노리는 전술을 활용했다. F조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한국이 독일을 꺾은 원동력도 상대보다 3km를 더 뛴 왕성한 활동량이었다.
유로2008 우승 이후 스페인은 세계 축구 흐름을 주도했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 국제축구연맹(FIFA) 최하위 팀(70위)이지만 상대보다 더 많이 뛰며 승리를 챙기는 러시아의 ‘체력 축구’에 밀렸다.
스페인은 1934년 이후 84년간 이어져 온 ‘개최국 상대 무승 징크스’에 또다시 발목이 잡혔다. 스페인은 이날까지 월드컵에서 개최국을 5번 상대해 한 번도 승리하지 못했다. 이 경기에 앞서 개최국으로서 스페인에 승부차기 패배를 안겼던 팀이 2002 한일 월드컵 8강전에서의 한국이었다.
스페인은 그 이전에도 1934 이탈리아 월드컵 당시 개최국 이탈리아와의 두 번 대결(무승부에 이은 재경기)에서 1무 1패를 기록했다. 1950년엔 준결승전에서 개최국 브라질에 대패(1-6)했다.
한편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우승 당시 결승골을 넣었던 스페인의 간판스타 안드레스 이니에스타(34)는 이날 러시아전을 마친 뒤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2006년 러시아와의 평가전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렀던 이니에스타는 이날 러시아전을 끝으로 대표팀에서 물러나게 됐다. 스페인 티키타카의 한 축이었던 이니에스타의 은퇴와 더불어 스페인 황금시대도 저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