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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맛 안 나는 세상? 약간의 ‘○○’만 있어도…

입력 | 2018-07-03 15:56:00


그래픽 동아DB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

2010년 개봉한 영화 ‘부당거래’에서 부패한 검사역을 맡았던 배우 류승범의 이 대사는 그간 다양하게 패러디 되며 지금도 회자되는 유행어다. 한 웹툰에서는 “‘호이(호의)’가 계속되면 둘리인 줄 안다”는 말로 변형돼 인기를 끌었고 “호의를 계속 베풀면 ‘호갱’이 된다”는 신(新)격언으로 탈바꿈하기도 했다. 표현은 달라도 메시지는 같다. 호의는 베푸는 사람만 손해다, 그러니 신중해라. 호의에 대한 이런 인식이 얼마나 광범위한지 연관검색어로도 ‘권리’ ‘둘리’ ‘분개’가 줄줄이 뜬다. 영화 ‘다크나이트’(2008년)에서 조커도 비슷한 말을 했다.

“잘 하는 게 있다면, 절대로 그냥 해주지 마라.”

각박하다. 물론 호의가 의무가 아닌 건 사실이다. 프랑스 작가 알랭 드 보통도 책 ‘공항에서의 일주일’에서 비슷한 분석을 했다. 공항에서 일하는 수많은 근로자를 관찰하며 그는 호의야말로 의례적 서비스를 감동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결정적 요소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아무리 연봉과 복지가 좋은 기업이라도 서류 상 정해진 업무 외의 ‘호의’까지 탑재하도록 지시할 순 없다. 인류애는 법으로 강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환자의 마음까지 다독이는 의사, 넘겨도 될 민원을 자기 선에서 처리해주는 상담원, 불편을 끼친 타인의 실수를 웃으며 넘겨주는 누군가의 관대함은 순전히 자발적인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이런 호의는 근본적으로 “수십 년 전 부모가 자비와 유머로 아이를 기르던 집에서 지배하던 사랑의 분위기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기초공동체인 가정에서 이뤄지는 따뜻한 교육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한 사회의 경제, 사회, 문화적 근간이 타인과 사회를 향해 자발적 선의와 호의를 베풀 줄 아는 시민을 양성한다는 뜻이다. 이런 이들이 많은 사회가 훨씬 살 맛 나는 곳일 거란 건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요즘 우리 사회의 현실은 안타깝다. 노키즈존과 맘충 논란에서부터 제주 예멘 난민에 대한 무조건적 혐오에 이르기까지 일상에서 차별과 배제가 만연하다. 조금의 손해도 용납 않는 성난 목소리에선 삶의 윤활유 역할을 해주는 ‘약간의 호의’마저도 찾아보기 어렵다.

누구도 성가신 남의 집 아이들이나 나와 상관없는 난민에게까지 선의를 가지도록 강요할 수는 없다. 적대와 배척 일변도로 흐르는 최근의 논쟁이 더 안타까운 건 그래서다. 의무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기꺼이 그것을 베풀 줄 알았던 이들이 갈수록 줄어든다. 우리 사회의 가장 기본적 장치인 가정, 교육, 문화 등 여러 분야가 삐걱대고 있어서는 아닐까. 단순한 찬반 논쟁을 떠나 ‘잃어버린 호의’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해 보이는 이유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