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동물차별 반대운동’ 급진화
“동물 그만 죽여라” 5월 영국 켄트 지역의 소규모 정육점인 ‘말로 부처스’ 외관에 빨간 스프레이로 ‘동물을 그만 죽여라’ ‘비건(채식주의자)이 돼라’고 적혀 있다. 동물보호단체 ALF의 소행으로 밝혀졌다. 정육점을 운영하는 말로 가족은 “왜 우리가 타깃이 됐는지 모르겠다”며 “이들의 협박으로 매일 두려움에 떨고 있다”고 말했다. 말로 부처스 페이스북
장 프랑수아 기아르 프랑스 정육업자연합 회장은 2일 내무부 관계자들과 만나 ‘공격적인 비건(vegan·동물성 식재료를 완전히 배제하는 엄격한 채식주의자)’으로부터 정육업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프랑스 내무부 측은 CNN에 “심각한 위협이 있는 장소에 감시 시스템을 도입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번 만남은 지난달 25일 기아르 회장이 제라르 콜롱 내무장관 앞으로 공개 서한을 보낸 뒤 성사됐다. 기아르 회장은 “(공격적인 비건들은) 프랑스 문화의 한 부분을 완전히 없애려는 목적으로 테러를 저지르고 있다”며 “이들의 물리적·언어적·도덕적 공격으로 1만8000여 명의 정육업자가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 정육업자연합에 따르면 지난 6개월간 100곳이 넘는 정육점, 생선가게, 치즈판매점이 비건들의 공격을 받았다.
정육업자를 대상으로 한 ‘헤이트 스피치’도 심각하다. 올해 3월 프랑스의 한 비건활동가는 트레베 슈퍼마켓 테러 당시 이슬람 극단주의자 손에 정육업자가 죽은 것을 두고 페이스북에 “살인자가 테러리스트 손에 죽었다고 당신들은 충격받았겠지만 난 아니다. 전혀 동정심을 느끼지 않는다. 정당한 일이다”라고 썼다가 7개월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호주 출신의 유명 동물해방운동가 조이 캅스트롱은 올해 초 영국 아침방송에서 “젖소를 인위적으로 수정시키는 낙농업자들은 강간범과 비슷하다”고 말해 비난을 받았다.
정육점을 공격하고, 혐오 발언을 서슴지 않는 일부 극단적인 비건들의 행태는 종차별주의에 기초한다. 종차별이라는 용어는 1975년 동물해방운동의 선구자 피터 싱어의 대표 저서 ‘동물 해방’에서 처음 등장했다. 그는 저서에서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들의 이익도 고려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 등 전 세계적인 차별 철폐 움직임이 최근 종차별주의 반대 운동에 기름을 부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달 26일 프랑스 주간지 르푸앙은 프랑스 사회학자 제랄드 브로네르의 분석을 인용해 “최근의 종차별주의는 노예제도 폐지, 남녀 차별 폐지 등 정치적 싸움의 연장선상에 있다. 종차별주의의 불안정한 철학적 기초는 오히려 인간 혐오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했다.
소셜미디어의 발전으로 육식 혐오가 더 손쉽게 확산될 수 있었다는 지적도 있다. 팀 보너 영국 농촌연맹 대표는 텔레그래프에 “동물옹호 단체들은 온라인 욕설 공격 같은 전략을 사용해 대기업보다는 소규모 정육점을 공격하는 비겁한 전략을 쓰고 있다”며 “소셜미디어가 이러한 공격의 기폭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위은지 기자 wiz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