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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감사원 이어 대법관까지… 민변은 문재인 정부 ‘인력뱅크’

입력 | 2018-07-04 03:00:00

민변소속 변호사 정관계 진출 잇따라




3일 오전 9시 50분경. 검은색 백팩을 멘 노신사가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에 들어섰다. 승용차를 타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대법원 근처까지 온 뒤 수행원 없이 혼자 정문을 거쳐 청사 안으로 걸어 들어가 김명수 대법원장을 만났다.

1980년 이후 판사와 검사를 거치지 않은 재야 변호사 출신으로 처음 대법관에 제청된 김선수 변호사(57)였다. 김 대법관 후보자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창립 멤버이자 회장을 지냈다. 김 후보자의 발탁으로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민변 소속 변호사들의 요직 진출이 정관계의 이슈로 떠올랐다. 이미 청와대와 감사원, 법무부 등에 민변 출신 변호사가 차지하는 자리가 꾸준히 늘어났기 때문에 민변이 현 정부의 ‘인력풀’이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 청와대, 감사원 요직에 이어 대법관까지

지난해 임명된 청와대 민정수석실 이광철 선임행정관과 김미경 법무행정관은 대표적인 민변 출신이다. 이 행정관은 2014년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당시 김 후보자와 함께 통진당을 대리했다. 현 정부 들어 임명된 조상희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과 김외숙 법제처장, 김진국 감사원 감사위원도 민변 소속이다. 또 지난해 탈검찰화 일환으로 민간에 개방된 법무부 요직에 민변 변호사가 대거 기용됐다. 비록 국회 인사청문회 때 불거진 불법 주식거래 의혹으로 중도 하차했지만 이유정 헌법재판관 후보자도 민변 출신이었다.

민변 출신 인사들은 ‘위원회 공화국’으로 불리는 문 정부 각 부처의 위원회 위원 자리에 다수 포진해 있다. 지난해 말 출범한 검찰 과거사위원회에는 위원장을 포함한 위원 9명 가운데 6명이 민변에서 활동했었다. 또 지난해 9월 출범한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회의 위원장을 민변 회장을 지낸 송두환 전 헌법재판관이 맡았다. 새 정부 들어 경찰청에 설치된 경찰개혁위원회에는 민변 소속 박찬운 한양대 로스쿨 교수와 김희수 변호사, 최강욱 변호사가 위원으로 들어갔다.

○ 문 대통령, 민변 창립 초기부터 회원 활동

1988년 창립한 민변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권인숙 성고문 사건 등 각종 시국사건 변론을 맡았으며, 사법개혁을 주장해온 법조계의 대표적인 진보 단체다.

민변이 정부의 ‘인력뱅크’ 역할을 한 건 창립 멤버였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집권 당시부터다. 문 대통령은 민변 창립 초기 부산 지역에서 지부장을 지냈고 10여 년간 민변 회원으로 활동했다. 2002년 청와대에 참모로 들어가면서 민변을 떠났지만, 청와대에서 나온 뒤 다시 민변에 가입할 정도로 소속감을 보였다.

문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잘 이해하는 민변 소속 변호사들이 앞으로도 정권의 ‘인재풀’ 역할을 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최근에는 각종 정부 위원회를 만들 때 지방변호사회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민변에 후보 추천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내는 경우가 잦아졌다고 한다. 민변은 소속 변호사들이 정관계 요직을 맡게 되자, 내부적으로 선출직을 포함해 공직에 있는 인사들을 모두 특별회원으로 바꾸고 의결권을 주지 않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임명권자 입장에서 국정 철학과 핵심 정책을 잘 이해하는 인물을 기용하려 하는 건 인지상정”이라며 “민변 소속 변호사들이 그동안 개혁적인 의견을 많이 냈기 때문에 진보적인 현 정부에 등용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하지만 정권 교체에 따라 특정 변호사단체가 권력 주변에서 득세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민변 소속이 아닌 한 변호사는 “집권 1, 2년 차는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정권 내내 그렇게 되면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고도예 yea@donga.com·김윤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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