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희 논설위원
사실 종전선언이란 화두를 처음 꺼낸 것은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었다. 2006년 11월 베트남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부시는 안전보장협정, 평화협정, 종전선언, 전쟁종식 같은 용어를 별다른 구분 없이 사용하며 “북한이 핵 포기 결단을 내린다면 나와 각하, 그리고 김정일이 함께 한국전쟁을 완전히 종결짓는 평화협정에 서명하고 싶다”고 말했다.
부시 발언에서 종전선언을 포착해낸 것은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노무현은 이듬해 9월 호주에서 다시 만난 부시의 입에서 공개적인 종전선언 발언을 끄집어내려 했다. 그러다 두 정상이 언쟁하는 것으로 비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백악관이 나서 “부시 대통령은 한국전쟁의 완전 종식을 지지했다”고 설명하면서 해프닝은 수습됐지만, 그 배경엔 양측 간 큰 인식 차가 있었다. 다만 노무현과 부시 모두 임기 말 업적 만들기엔 이해가 일치했다.
김정일의 답은 이랬다. “조선전쟁에 관련 있는 3자나 4자가 개성이나 금강산 같은 데서 모여 전쟁이 끝나는 것을 선포한다면 평화 문제를 논의하는 기초가 마련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노 대통령께서 관심이 있다면 부시 대통령하고 미국 사람들과 사업해서 좀 성사시켜 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않은가 생각한다.” 아무래도 뜨뜻미지근한 반응이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10·4 정상선언 4항 ‘3자 또는 4자 정상의 종전선언 추진’이다. 하지만 미국은 비핵화 진전이 없는 종전선언에 난색을 표했다. 북한마저 호응해주지 않으면서 종전선언 논의는 허망하게 사라졌다.
그리고 10년이 지나 4·27 판문점선언에서 소생했다. 아직은 미생(未生)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6·12 북-미 회담 직후 남북미 3자 회담이 열릴 것으로 기대했지만 무산됐다. 합의문에도 종전선언 얘기는 없었다. 정부는 연내 추진하겠다며 한발 물러섰지만 여전히 정전협정 65년을 맞는 이달 27일, 또는 9월 뉴욕 유엔총회에서 가능성을 엿보고 있다.
정작 문제는 종전선언의 내용이다. 정부는 전쟁을 끝냈다는 선언인지, 전쟁을 끝내겠다는 선언인지조차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의 대북정책 멘토인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마저 “정치적 선언으로 평화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법적 효력을 갖춘 종전협약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한다. 종전선언을 최악의 악몽이라 여기는 보수 쪽은 더 얘기할 필요도 없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