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정도언 정신분석학자·서울대 명예교수
비법은 잠을 포기하는 겁니다. 이미 해 보셨다고요? 전혀 효과가 없었고 더 힘들기만 했다고요? 이유는 뻔합니다. 완전히 포기하지 못하고 끈질기게 잠에 미련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미련에는 자신도 어쩔 수 없는 노력, 좌절, 후회가 따릅니다. 마음을 완전히 비워야 합니다. 그러니 비법이라고는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약간 수정한 비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잠이 안 올 때 거꾸로 잠을 완벽하게 안 자려고 노력해 보는 겁니다. 그것도 효과가 별로 없다면, 잠을 자야만 한다는 마음을 비울 수 없다면 마음을 엉뚱한 곳으로 돌리면 됩니다. 흔히 “양 하나, 양 둘, 양 셋…” 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오히려 뇌기능이 활성화되어 역효과가 납니다. 또 다른 방법인 독서는 불을 켜 놓는 바람에 오던 잠도 달아납니다. 잠자리에 누워서 조용히 할 수 있는 복식호흡이 강력한 대안입니다. 배꼽 위에 한 손을 얹은 후 그 손을 승강기로 여기고 배로 숨을 쉬는 힘으로 손을 천천히 올렸다 내렸다 하면 됩니다. 이때 손에 집중해야지 잠에 집중하면 안 됩니다.
마음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마음을 잡으려고, 다스리려고, 통제하려는 노력은 대개 허망하게 끝납니다. 그냥 마음을 놓아주는 것도 마음을 통제하는 방법입니다. 마음을 놓아 준 상태에서 약간 거리를 두고 내 마음을 말로 표현해봅니다. 예를 들어 “나는 지금 불안하다” “나는 지금 화가 나 있다” “나는 지금 열등감을 느끼고 있다” “나는 지금 좌절감에 빠져 있다” 등등입니다. 막연하던 마음 상태를 그런 식으로 이름을 지어서 정리하면 정확하게 알게 되고, 알면 다스릴 수 있습니다.
잠이 안 오는 것은 결국 내 탓이지, 남의 탓이나 환경 탓이 아닙니다. 조용한 환경에서만 잠이 온다면 소리 크게 틀어놓은 텔레비전 수상기 앞에서 졸고 있는 불면증 환자의 모습은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남 탓을 하는 것을 정신분석학에서는 투사(投射)라는 방어기제로 설명합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자신의 감정이나 욕망 등을 남에게 돌려 버림으로써 자신을 정당화하는 무의식적인 마음의 작용”입니다. 투사는 어린아이들이 전문적으로(?) 쓰는 방법입니다. 어떤 일이 어긋날 때 어린아이가 엄마 탓, 누나 탓, 동생 탓을 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투사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정말 큰일입니다. 편견, 시기와 질투, 의심이 모두 투사의 결과입니다. 안타깝게도 세상에는 투사가 넘칩니다. 아마 오늘 아침 신문 정치권 기사에도 변함없이, 내 탓을 하는 성찰의 아름다운 광경은 전혀 볼 수 없고 남 탓을 하는 말싸움 소식이 등장할 겁니다.
방어기제라고 해서 유치한 수준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매우 성숙한 방어기제의 대표로는 이타주의(利他主義)가 있습니다. 어렵게 들리시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안에 관용, 용서, 존경, 감사, 겸손, 자비, 인내, 용기와 같은 덕목들이 다 들어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또 다른 성숙한 방어로는 승화(昇華)가 있습니다. 인정되지 않는 욕구나 충동을 가치와 보람이 있는 더 높은 수준의 활동으로 바꾸어 하는 행위입니다. 예를 들면, 공격성을 스포츠 행위로 바꾸어 훌륭한 선수가 되는 겁니다. 해학(諧謔·유머)도 성숙한 방어기제로 긴장과 갈등 상황에서 숨을 쉴 수 있게 도와줍니다. 단, 조심해야 할 점은 재수 없으면 집단적 비난의 대상이 된다는 겁니다.
어떤 지도자가 성숙한 수준의 방어기제에 포함된 덕목들을 모두 지니고 있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그런 방향으로 노력한다면 역사에 이름을 남길 겁니다. 국민 개개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국민이 늘어날수록 진정한 의미의 선진국이 되는 겁니다. 오늘도 대한민국 거리 곳곳에서는 이타주의보다 이기주의가 판을 칠 겁니다. 고함, 욕설, 멱살잡이와 함께. 집안에만 있으면 안전할까요? 아닙니다. 텔레비전 아침 드라마에서는 투사의 방어기제로 푹 적셔진 세상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되풀이됩니다. 오래 전 가톨릭교회가 주도했던 “내 탓이오” 운동이 그리워집니다만….
정도언 정신분석학자·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