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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이슈/서동일]우버가 카이로에서 성공한 이유

입력 | 2018-07-09 03:00:00


지난해 이집트에서 우버 운전기사로 활동한 사람은 15만7000명이다. 2014년 서비스를 시작해 불과 4년여 만에 급성장했다. 높은 실업률과 악화된 이집트 경제 상황이 우버의 성장을 도왔다. 우버 홈페이지 화면

서동일 카이로 특파원 dong@donga.com

이집트의 차도는 ‘난장판’이라고 표현해도 과하지 않다. 신호등과 차선 정도는 쉽게 무시해 버린다. 운전자들은 쉴 새 없이 경적을 울려댄다. 양보를 모른다. 조금만 틈을 보여도 자동차 머리를 밀어 넣기 일쑤다. 한국 교민이나 주재원 대부분은 도로 위에서 겪은 황당한 일화 하나씩은 갖고 있다.

“조수석에서 깜박 잠이 들었는데 무언가 차에 ‘툭툭’ 부딪히는 소리가 나 눈을 떴다. 쓰레기를 가득 실은 대형트럭이 덮개도 안 덮고 그냥 고속도로를 달렸다. 종이박스, 음료수 캔, 비닐 같은 쓰레기가 눈처럼 흩날렸다. 난생처음 보는 ‘장관’이었다.”(카이로 한국대사관 관계자)

이집트에선 도로 사정만큼이나 형편없는 게 인터넷 환경이다. 동네 슈퍼에 들어갔을 뿐인데도 스마트폰 인터넷 신호가 끊겨 버린다. 이집트의 인터넷 속도 순위는 세계 131위. 매년 국가별 모바일·인터넷 속도를 측정하는 우클라 조사에 따르면 이집트의 인터넷 평균 속도는 한국의 5%, 세계 평균의 13.6%에 불과하다.

이런 이집트에서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큰 성장을 한 기업이 차량 공유 서비스 업체 우버(Uber)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귀를 의심했다. 우버의 경쟁력은 차량을 쉽고 빠르게 호출하고, 운전자·차량·서비스에 평점을 매겨 서비스 질의 향상을 유도하는 데서 나온다. 그런 우버가 교통문화, 인터넷 환경이 형편없는 이집트에서 성장하고 있다는 말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카이로 특파원으로 부임한 지 보름이 지났다. 그동안 거의 매일 2∼4차례 우버를 이용해 보니 이집트 우버만의 특징이 조금씩 보였다. 그리고 우버의 ‘성공 이유’를 미뤄 짐작할 수가 있었다.

이집트에서 만난 우버 운전사는 대부분 젊었다. 우버 측에 따르면 운전사 10명 중 7명이 17∼35세이다. 하지만 차량은 낡고 오래됐다. 비자 문제로 기자에 위치한 한국대사관을 방문했을 때 우버 애플리케이션(앱)에는 ‘쉐보레’ 차량이 연결됐다고 표시됐지만 눈앞에 나타난 것은 ‘대우자동차’ 마크가 선명한 1990년대 후반 출시된 ‘누비라’였다. 하지만 어디서든 대기 중인 차량이 많아 매번 5분 안에 우버 차량을 탈 수 있었다.

한창 대학을 다니거나 구직활동을 해야 하는 젊은 사람들이 낡은 중고차를 사서 우버 운전사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지난해 이집트 청년실업률은 30%가 넘었다. 2011년 민주화혁명 이후 시작된 경제 침체기가 지금까지 이어져 일자리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생활물가는 가파르게 올라 취업 준비에만 매달릴 수도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초와 비교해 지하철 요금은 3배, 식료품과 생필품 가격도 30% 이상 올랐다. 상하수도·전기 요금도 50% 올랐다.

올해로 우버 운전사가 된 지 3년째인 아흐메드 씨(30)는 “직장을 구하는 동안에만 파트타임으로 하려고 했지만 결국 취업을 못 했다. 둘째 아들은 치료도 제대로 못 받고 지난해 병으로 죽었다. 남은 큰아들이라도 제대로 공부를 시키고 싶다. 차가 큰 고장 없이 버텨주기를 매일 기도한다”고 말했다. 그의 중국산 ‘비야디’ 차량은 누적 주행거리가 이미 16만 km를 넘었다.

올해 초 우버는 “지난해 이집트 경제는 어려움을 겪은 반면 우버는 상당한 진보를 이뤘다”고 정리했다. 매년 악화되는 이집트 경제 상황이 우버의 성장동력이 된 셈이다. 우버 측에 따르면 지난해 이집트 우버 운전사로 활동한 사람만 15만 명을 넘는다. 이 중 절반 이상이 대학 졸업자고, 10만여 명이 35세 미만이다. 나라 경제의 허리가 돼야 할 세대 중 상당수가 운전사가 되겠다며 몰리는 이런 상황이 정상은 아니다. 매년 강도 높은 경제개혁을 추진해온 이집트가 올해는 이런 비정상을 과연 끝낼 수 있을까.
 
서동일 카이로 특파원 d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