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김재호 과학평론가
내가 가장 멀리 상상할 수 있는 곳은 아마도 은하수(우리 은하)가 아닐까 싶다. 20년 전 전북 장수군에서 늦은 밤에 바라본 은하수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런데 최근 ‘천체학과 천체물리학’ 학술지엔 은하수의 길이가 우리가 알던 사실보다 더 길다는 연구결과가 공개됐다. 은하수의 지름을 가로지르려면 20만 광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필자가 예전에 밤하늘에서 상상한 이상으로 별이 많았고, 은하수는 훨씬 더 광활했던 셈이다. 그렇다고 은하수가 팽창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이전 연구는 은하수를 가로지르려면 10만∼16만 광년이 걸린다고 가정했다. 1광년은 빛이 1년 동안 가는 거리로서 대략 6조 마일 혹은 9조6000억 km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번 연구결과에 따르면 빛의 속도로 20만 년을 가야 은하수를 가로지를 수 있다. 지구의 지름은 약 1만2700km다. 태양은 지름이 140만 km 정도로 지구의 약 110배이다. 따라서 은하수는 태양 지름의 약 1조3700억 배이다. 천문학자들은 종종 은하의 범위를 수정해왔다. 일례로 안드로메다은하의 천체는 우리 은하계와 거의 같은 질량임이 뒤늦게 드러났다. 이로써 두 은하계가 40억 년 내 충돌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예측된다.
모든 나선 은하는 은하 내 별들의 주요 부분을 수용하는 매우 얇은 회전 원을 가진다. 이는 원반부로 불린다. 즉, 은하의 중심부가 부푼 엄청나게 큰 원반 모양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원반부의 크기는 제한돼 있기에 이 원반부 지름을 넘어 가면 별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즉, 은하의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별들이 모인 밀도가 줄어드는 게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번 연구를 통해 원반부 밖에도 별이 많이 있을 것으로 분석됐다. 은하수엔 태양과 태양계 행성을 포함해 1000억∼1500억 개의 별이 있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많이 보아온 우리 은하의 원반부 훨씬 밖에도 별이 존재할 확률은 95.4∼99.7%였다.
지금까지 과학자들은 태양이 은하수 반경의 절반 내에서 은하의 중심을 공전한다고 가정했다. 특히 은하 중심부에서 태양까지 거리에 2배 이상이 되는 거리엔 별이 많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구만 하더라도 은하수의 중심으로부터 3만 광년 떨어져 있다. 허나 이번 연구결과에 따르면 은하 중심으로부터 태양까지의 거리보다 3, 4배에 이르는 거리에도 별이 많이 존재한다.
은하수의 나이는 132억 년으로 추정된다.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는 서기 8년에 출판된 신화 전설집 ‘메타모르포세스(변태)’에서 “하늘이 맑을 때 드러나는, 광채가 유명한 ‘은하수’는 저 높은 곳을 가로지른다”라고 적은 바 있다. 처음으로 ‘은하수(Milky Way)’가 언급된 것이다. 은하수에 대한 의문과 이해는 신화나 문학 속에서 나타나다가, 르네상스를 맞이해 구체적 모습이 드러난다. 우주의 중심은 지구에서 태양으로, 태양에서 은하로 서서히 옮겨 왔다.
은하는 별들의 집단 모임이다. 별들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모여 있느냐에 따라 은하의 지름은 달라진다. 은하수는 수천억 개의 은하 중 하나이다. 그 은하수의 지름이 커진다는 건 더 많은 별이 모여 있다는 뜻이다. 의미가 좀 더 각별해진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상상할 수 있는 범위가 더 넓어졌다는 것만으로 행복한 일이다. 은하수의 지름이 늘어나는 만큼 상상의 힘 역시 커진다.
김재호 과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