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통상자원부는 4일 강원도 원주시 원주의료기기테크노밸리에서 열린 ‘산업부-복지부 바이오헬스 업계 간담회’에서 융복합 의료기기 육성전략을 발표했다. 융복합 의료기기 육성을 통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동시에 빠르게 증가하는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줄인다는 계획이다. 홍은심 기자 hongeunsim@donga.com
《#1 미국의 A사는 의료기기 제조업체다. A사는 스탠퍼드 병원과 장비 개발 초기 단계부터 긴밀하게 협조하면서 수술 장비인 사이버나이프(CyberKnife) 개발에 성공했다. 1994년 개발된 이 장비는 대당 70억∼100억 원의 고가 장비임에도 불구하고 2001년 미국식품의약국(FDA) 승인을 거쳐 현재 230여 개 병원에 설치되는 등 독점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2 국내 B기업은 의료기기 개발단계에서 자문할 의사를 찾을 수 없어 의료 장비를 독자적으로 개발했다. 그 결과 수요자인 의사의 요구사항을 충족할 수 없어 처음부터 다시 개발해야 했다.
#3 국내의 또 다른 의료기기 제조업체인 C기업은 지인을 통해 의사를 소개받아 의료기기 개발을 시작했다. 하지만 의사의 바쁜 일정으로 심도 있는 논의가 어려웠다. 결국 C업체는 개발을 포기했다. 》
선진국들은 병원과 의료기기 기업 간에 연구개발 착수 단계부터 아이디어 교류, 컨설팅 등 긴밀한 협력이 이뤄지고 있다. 그 결과는 의료기기 시장 선점으로 이어진다. 온도계 생산 업체였던 일본의 B사는 의사와의 공동개발로 카테터, 인공혈관, 약물주입펌프 등 종합의료기기업체로 성장해 매년 약 4조 원의 매출액을 기록하고 있다.
이에 반해 국내 병원은 진료 위주의 운영으로 의료기기 기업과 공동 연구개발이 어렵다. 또 의료기기의 최종 수요자는 환자임에도 병원이나 의사들이 의료기기 구매를 결정하고 임상시험 등 까다로운 조건을 내세워 국산 의료기기들이 설 자리가 없었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목소리였다.
이에 산업통상자원부는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2014년부터 ‘병원-기업 간 공동연구개발 플랫폼’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병원 현장의 아이디어 발굴부터 전임상, 임상시험, 인허가, 의료기기 상용화까지 지원한다.
가령 자기공명영상(MRI), X선 등 진단치료기기 개발에 필요한 내용들은 분당서울대병원이 기업을 지원한다. 초음파, 내시경 등 생체 현상 측정기기 개발은 고려대안암병원이 의료기기 업체와 협력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그 밖에도 △체외진단기 개발은 서울성모병원 △치과용 진단기구와 재료 개발은 서울대 치과병원 △플랫폼 기반의 의료-헬스 정보기술(IT) 통합 지원 플랫폼 개발은 연세의료원 △레이저 수술기 개발은 서울아산병원이 기업들과 협력해 임상경험과 아이디어를 전달한다. 기업들은 병원들과 임상시험, 인허가 체계를 구축하고 개발 제품의 컨설팅을 받을 수 있다.
산업부는 2020년까지 5000만 명 규모의 바이오헬스 빅데이터를 구축하고 시범사업을 추진한다. 병원별로 상이한 포맷의 의료데이터를 표준화한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병원의 데이터는 현재와 동일하게 병원 내에서 보호하고 통계적 분석결과만 활용하는 분산형 바이오헬스 빅 데이터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그간 의사들이 연구에 필요한 데이터를 만드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며 “바이오헬스 빅데이터가 구축되면 데이터 처리 과정이 줄어들어 신속하게 연구를 수행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분산형 바이오헬스 빅데이터를 활용하면 고령자, 만성질환자의 생체정보를 기반으로 건강상태를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이상 징후 예측 서비스 등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 개발이 가능해진다.
연구개발-사업화 전 주기 지원
정부는 융·복합 의료기기의 시장 진출을 앞당기기 위해 기업이 연구개발에 착수할 때 임상시험, 인허가 등 사업화 관련 이슈를 검토해 제공할 예정이다. 연구개발이 끝나면 시장진출에 필요한 컨설팅도 제공한다.
의료데이터 기반의 진단 시스템과 수술용 로봇, 지능형 생체재료, 융·복합 바이오 소재 등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결합한 미래형 첨단 융·복합 의료기기 개발도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우선 기존 의료기기 품질과 성능 향상을 위해 기업에 필요한 지원을 하고 의료기기 실수요자인 병원의 요구사항을 반영한 의료기기 개발을 진행한다. 기존의 MRI 등 10개의 의료기기 명품화 연구회를 내년까지 15개로 확대한다.
국산 의료기기의 수요를 확대하기 위해 선구매 의사가 있는 ‘수요기반 의료기기 개발’도 추진할 예정이다. 대학에 국산 의료기기 활용 센터를 지정해 국내외 의료인, 전공의, 의과대학생들의 실습에 활용함으로써 국산 의료기기에 대한 사용 경험을 늘리고 실제 구매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지원한다.
그 밖에 해외시장 개척 지원, 해외진출 지원 협의체 구성, 해외 시험 인허가 지원으로 국산 의료기기의 해외시장 진출을 적극 도울 예정이다.
정부는 기업지원 인프라 확충을 위해 2019년까지 대구에 의료기기 소프트웨어 시험평가 센터를 구축하고 국제기준 SW시험평가를 지원한다. 원주에는 모바일 헬스케어 테스트베드를 만들어 모바일 헬스케어에 필요한 기기 개발과 서비스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한다. 아울러 기업이 필요로 하는 연구개발 전문 인력을 양성해 공급할 예정이다.
홍은심 기자 hongeuns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