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청 자사고 지정취소 위법 판결
지난해 6월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자율형사립고 폐지를 정부에 제안하자 자사고 학부모 연합회원들이 자사고 폐지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당시 이들은 “자사고 폐지는 학생과 학부모를 혼란에 빠뜨리는 정책”이라며 반발했다. 동아일보DB
대법원은 이날 판결에 대해 “기존 교육제도의 변경은 교육 당사자 및 국민의 정당한 신뢰와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 또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절차적으로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원칙을 확인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진보 성향의 현 교육부와 서울시교육청의 해석은 달랐다. 이날 대법 판결 의미를 두고 “절차적 적법성을 따진 판결”이라고 의미를 축소하며 “앞으로 자사고 폐지 정책을 계속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교육계에서는 “현 정부의 교육정책은 사법부도 무시한 채 달리는 ‘폭주열차’ 같다”는 우려가 나온다.
그러나 그해 6월 4일 ‘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하겠다’는 공약을 내건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당선되면서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7월 1일 조 교육감이 취임하자 시교육청은 8월부터 기존 자사고 평가 기준을 바꾸는 작업에 들어갔다. 기존 평가 지표의 배점을 줄이고 ‘교육의 공공성과 학교의 민주적 운영’이라는 15점짜리 재량평가 기준을 새로 만들어 앞서 확정된 자사고 평가 점수를 수정했다.
수정 평가에서 경희고 배재고 세화고 우신고 이대부고 중앙고 등 6곳의 자사고가 70점 미만 결과를 받았다. 교육계 관계자는 “당시 떨어뜨릴 자사고를 만들기 위해 기준까지 바꿔 초법적 행정을 한다는 비판이 거셌다”며 “실제 조 교육감이 곧바로 6개 자사고의 지정을 취소하자 갈등이 격화됐다”고 말했다.
당시 박근혜 정부의 교육부는 “이런 식의 지정 취소는 교육부 장관과 사전 협의하라고 규정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위반한 것으로 교육감의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이라며 시교육청에 처분을 취소하라는 시정명령을 내렸다. 조 교육감이 응하지 않자 그해 11월 교육부는 직권으로 지정취소 처분을 취소했다. 이에 조 교육감은 12월 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소송을 내기에 이르렀다.
소송 제기로부터 3년 8개월 만에 나온 이날 판결에서 대법원은 교육부의 손을 들어줬다. 위법 행위를 한 건 조 교육감이란 것이다. 대법원은 “자사고의 지정 및 취소는 해당 학교 재학생과 입학하려는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며 “앞서 관련법(운영 연장과 지정 취소 관련)의 개정 역시 자사고를 보다 안정적으로 운영하게 하려는 취지에서 비롯됐다”고 밝혔다.
특히 대법원은 시교육청이 갑자기 재량평가 항목을 추가해 자사고들의 평가 결과를 뒤집은 데 대해 “종전 평가에 대한 자사고들의 신뢰는 합리적이고 정당한 것으로 보호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이어 “‘공교육의 정상화와 자사고의 바람직한 운영’이라는 공익은 자사고 지정을 유지한 채 운영 방식을 개선하는 것으로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며 “새로운 교육제도는 신중하게 시행돼야 하고 그런 교육제도를 다시 변경하는 건 더욱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조 교육감-교육부는 ‘마이웨이’
그러나 이날 조 교육감은 “대법원의 판결은 박근혜 정부에서 행정기관 간 갈등에 대해 판결한 것에 불과하다”며 “대법원이 자사고 폐지를 반대하는 것으로 과잉 해석하지 말 것을 분명히 밝힌다”고 판결 의미를 축소했다. 이어 “시도교육감에게 자사고·특목고 지정 취소와 고교 입학전형 전권을 위임하라”고 요구했다.
교육계에서는 “사법부가 이념이나 정치 논리에 따라 순식간에 교육제도를 뒤집는 현 정부의 행태를 경계한 것인데 현 정부의 교육정책은 ‘마이웨이’로 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김재철 한국교총 대변인은 “자사고 지원 탈락 학생들에게 일반고 지원 불이익을 주지 못하도록 한 지난달 헌법재판소 가처분 인용에 이어 이번 대법원 판결까지 법은 일관되게 교육제도의 안정성을 주문하고 있다”며 “헌재와 대법 판결까지 무시하며 정치논리만 펴는 교육당국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임우선 imsun@donga.com·김호경·김윤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