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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우경임]성전(性戰)

입력 | 2018-07-14 03:00:00


1977년 출간된 ‘이갈리아의 딸들’은 페미니즘 소설의 고전이다. 노르웨이 작가 게르드 브란텐베르그가 썼다. 남녀 역할을 바꾼 미러링(mirroring) 방식으로 뿌리 깊은 성차별을 비틀어 보여준다. 가모장제(家母長制) 유토피아로 묘사되는 상상의 나라 ‘이갈리아’. 움(Wom·여성)은 맨움(Manwom·남성)을 지배한다. 맨움인 주인공 페트로니우스가 움에게 강간을 당하자 엄마 브램 장관은 “모두 잊자. 더럽혀진 맨움을 누가 원하겠니? 이제 해가 진 다음 바닷가에 가선 안 돼”라고 달랜다. 페트로니우스는 맨움 해방운동에 투신한다.

▷여성우월주의 성향의 온라인 커뮤니티 ‘워마드(Womad)’도 여성혐오를 성별을 바꿔 재현하는 ‘미러링’을 표방했다. 여성을 ‘김치녀’로 부르면, 이들은 남성을 ‘한남충’(한국 남자 벌레)으로 부르는 식이다. 당초 여성혐오 문화를 바꿔 보자는 의도였겠으나 최근 과격한 일탈이 계속되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천주교 성체(聖體) 훼손 사진과 꾸란 소각 사진이 온라인에 올라온 데 이어 성당을 불태우겠다는 글까지 나왔다.

▷12일 남성우월주의 성향의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의 한 회원이 “워마드에 꾸란 소각 사진이 올라왔다는 사실을 이슬람 테러단체에 알렸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이슬람 단체와 접촉한 것은 테러방지법에 저촉되는 일이 아니냐”며 ‘빠른 처리’를 청원하는 글이 올라왔다. 인터넷상 남녀 전쟁은 익명성에 기대 혐오가 혐오를 재생산하는 양상을 보인다. 이런 혐오 발언과 행위들로 ‘미투 바람’을 타고 모처럼 관심을 모은 여성운동에 역풍이 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페미니즘 진영에선 여성혐오가 사라지면 미러링도, 남성혐오도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혐오는 결코 놀이가 될 수 없다. 역지사지(易地思之)가 없으면 타인에 대한 존중이라는 미러링의 목적도 빛이 바랜다. ‘결국 세상은 우리에 의해 바뀔 것이다.’ 혜화역 시위에 등장한 피켓이다. 양성평등을 원하는 다수 남성과 여성의 공감이야말로 세상을 바꿀 동력이 될 수 있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