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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인식 자판기가 맞춤상품 추천, 어때요?”

입력 | 2018-07-17 03:00:00


‘편의점 어떻게 바뀔까’ 대학수업 개설해 아이디어 모아봤더니… 11일 서울 성동구 이마트24 성수본점을 찾은 한 고객이 무인 자동판매기에서 상품을 구매하고 있다. 이마트24는 이 자동판매기에 음성인식 기술을 도입해 고객의 목소리만 듣고도 필요한 상품을 추천할 수 있도록 만들 계획이다. 손가인 기자 gain@dong.com

“어제 술을 많이 마셨더니 목이 칼칼한데….”

편의점에 들어온 손님이 헛기침을 하며 혼잣말을 하자 매장 안에 설치된 자동판매기 화면에 숙취 해소 음료와 해장을 할 수 있는 즉석식품이 줄줄이 뜬다. 손님이 “요즘 제일 잘나가는 라면이 뭐야?”라고 물으면 자동판매기가 최근 판매량 순으로 인기 상품을 자동 추천해 주기도 한다. 손님은 화면에 뜬 상품을 가볍게 터치해 물건을 받아간다.

먼 미래의 한 장면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곧 현실에서 만나게 될 편의점의 모습이다. 이 아이디어는 신세계그룹의 편의점 브랜드 이마트24가 대학생들과 머리를 맞대 도출한 것이다. 이마트24는 이 아이디어를 실제 편의점 매장에 차차 적용할 계획이다.

○ ‘편의점’ 주제로 정규 대학 수업 만들어

이마트24는 올해 미래형 편의점 연구를 위해 교육부의 산학협동 사업 ‘링크플러스’에 참가해 성균관대와 동국대에 3학점짜리 정규 강좌를 개설했다. 편의점 업계에서 전공 학점을 부여하는 대학교 강좌를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래 주요 소비층인 대학생들로부터 소비자 맞춤형 아이디어를 받아보겠다는 시도다.

올해 상반기(1∼6월) 수업에서는 총 3개 팀의 아이디어가 최우수 아이디어로 선정됐다. 고객의 음성을 인식해 제품을 추천하는 자동판매기뿐 아니라, 매장에 설치된 카메라가 고객의 동선과 구역별 체류 시간, 성별과 연령 등을 분석해 맞춤형 제품을 추천하고 키오스크로 결제할 수 있도록 하는 편의점도 등장했다. 택시 안에 상품을 진열해 두고 출근시간에는 빵과 곤약젤리 등 식사 대용품을, 퇴근시간에는 숙취해소제 등을 팔아 택시 기사와의 상생을 도모하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이마트24는 하반기(7∼12월)에도 같은 수업을 확대 편성할 예정이다. 또 11월에는 전국 대학생을 대상으로 미래형 편의점 아이디어 공모전을 열 계획이다. 채교욱 이마트24 경영전략팀장은 “우수 아이디어로 선정된 팀의 학교 근처에 편의점을 지어 해당 아이디어를 실제 매장에 적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정용진 “오프라인 유통채널 미래는 편의점에”

신세계그룹이 미래형 편의점에 집중하는 것은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경영철학 때문이다. 신세계그룹에 따르면 정 부회장은 “온라인 유통 채널의 선전으로 오프라인 채널의 설 자리가 점점 줄고 있다”며 “1인 가구, 맞벌이 가구가 주요 고객인 편의점에 오프라인 유통기업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정 부회장이 특히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기존의 편의점과 차별화된 점포 개발이다. 한국편의점산업협회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전국 편의점 점포 수는 4만192개다. 이미 포화상태인 편의점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기존 형태를 답습해서는 안 된다는 것. 이마트24가 올해 3월부터 외부 전문가들과 정보통신기술(ICT)이 접목된 미래형 편의점 연구를 시작한 ‘편의생활연구소’도 정 부회장의 야심작이다. 이번 산학협력 수업은 편의생활연구소의 첫 번째 결과물이다.

이마트24가 연구하는 미래형 편의점은 ‘무인(無人)점포’다. 이 때문에 최저임금, 일자리 축소 등 최근 우리 사회의 화두와도 무관하지 않다. IT를 기반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세계 시장의 흐름을 따라잡으려면 무인화 매장은 확대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실제로 중국은 고객의 얼굴로만 결제가 가능한 편의점을 시범사업으로 진행하고 있다.

최재붕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교수는 “미국의 아마존, 중국의 알리바바 등 세계적인 IT 유통기업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무인 편의점에 대한 거부감을 해소해야 한다”며 ”우리 유통업계가 국제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춘다면 IT와 관련된 고차원적인 새 일자리 창출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손가인 기자 ga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