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옥 채널A 스포츠부장
“레블뢰가 아닌 레누아(Les Noirs·검은색)”라는 조롱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다양성의 힘은 프랑스를 20년 만에 다시 정상에 올려놓았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우승 때도 지네딘 지단(알제리계), 파트리크 비에라(세네갈계) 등 12명 이민자 출신들의 활약이 컸다. 이후 테러, 난민 문제 등으로 프랑스 특유의 관용 문화가 흔들렸지만, 이번 우승으로 통합의 가치가 다시 힘을 받게 됐다.
3위를 차지한 벨기에도 같은 맥락에서 주목을 받은 팀이었다. 프랑스만큼은 아니지만, 이민자 출신이 절반가량 차지했다. 아프리카 콩고계인 에이스 로멜루 루카쿠를 비롯해 마루안 펠라이니, 뱅상 콩파니 등 상당수 핵심 선수들이 이민자 출신이다. 공용어인 네덜란드어와 프랑스어를 못 하는 이민자도 적지 않아 라커룸에서 영어를 사용할 정도였다.
그런데 꼭 언급해야 할 나라가 또 하나 있다. 바로 독일이다. 독일은 4년 전 메주트 외질 등 6명의 이민자와 함께 정상에 올랐던 팀이다. 이번 월드컵에서는 80년 만에 조별 예선에서 탈락해 충격을 낳았다. 자만심, 체력 부족, 단조로운 전술, 주력 선수들의 부진 등 여러 원인이 제기됐는데, 이민자를 둘러싼 갈등도 큰 문제였다.
터키계인 외질과 일카이 귄도안은 이번에 독일 국민들의 비난에 시달렸다. 월드컵 직전인 5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함께 사진을 찍고, 거기에 ‘나의 대통령’이라고 쓴 것이 화근이었다. 독일 국민들은 그를 대표팀에서 제외하라고 요구하면서 팀은 극심하게 흔들렸다. 독일이 예선에서 탈락하자, 독일축구연맹은 외질을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외질의 아버지는 자식을 패배의 희생양으로 삼는다며 발끈했다. 우연한 불협화음이 아니었다. 독일 언론은 대표팀 내 독일계 선수와 이민자 선수들 간 파벌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프랑스 사례가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하고 있지만, 엄밀히 말해 월드컵에서 이민자는 양날의 칼이었다. 성취도 이끌지만, 상처를 낼 수도 있다는 걸 동시에 보여줬다. 이민자 그 자체로 좋고, 나쁜 건 아니다. 이민자를 어떻게 바라보고, 또 그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가 관건이었다. 프랑스와 독일 축구팀의 모습은, 이민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단면이라고 볼 수 있다. 축구는 그 사회를 반영한다.
우리도 인구절벽 등으로 이민자가 늘면서 이미 다인종, 다문화 사회로 접어들었다. 제주에 예멘 난민이 몰리면서, 이제 난민 문제도 피할 수 없는 이슈가 됐다. 우리 축구대표팀도 언젠가는 다인종 팀이 될 것이다. 우승을 할지, 예선 탈락을 할지. 이민자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미래 모습과 궤를 같이할 것이다. 월드컵이 우리 사회에 던진 메시지를 곱씹게 된다.
윤승옥 채널A 스포츠부장 touc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