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인상 후폭풍]지구촌 ‘최저임금 인상’ 붐
내년도 최저임금을 올해(시급 7530원)보다 10.9% 올린 8350원으로 결정하면서 국내에선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가져올 고용 충격에 대한 논란이 한창이다. 이는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각국에선 최저임금이 핫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시급 1만5710원으로 세계에서 최저임금이 가장 높은 호주는 이달 1일부터 3.5% 또 올렸다. 최저임금 인상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것은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고 각국 정부가 내수 진작을 위해 근로자의 소득 증대 정책을 추진하면서 형성된 기류다. 하지만 그 경제적 효과를 놓고는 논쟁의 소지가 많다.
○ 아직도 답 찾지 못한 ‘인상 효과’
시애틀은 2015년 최저임금을 11달러(17일 환율 기준 1만2370원)로 올린 뒤 2016년 13달러(1만4620원), 지난해 15달러(1만6870원·500인 이상 건강보험 미가입 사업장 대상)로 올렸다. 2021년부터는 모든 사업장에 15달러가 적용된다. 시애틀이 선수를 치고 나가자 18개 주가 최저임금 인상을 추진 중이다. 미국은 의회가 정하는 연방최저임금과 별도로 주별, 도시별 최저임금을 따로 정한다.
워싱턴대 연구팀은 시애틀이 최저임금을 10% 올릴 때마다 시급 19달러 이하의 저임금 일자리가 7%(9만3382개→8만6842개), 임금은 6.6%(월급 1897달러→1772달러) 감소했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오히려 저임금 근로자의 일자리가 줄고 실업자가 늘면서 평균 소득이 떨어졌다며 ‘최저임금 인상의 역설’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반면 UC버클리대 연구팀은 “경기 호황으로 전체 근로자의 임금이 인상되면서 저임금 근로자가 고임금 근로자가 됐다. 이에 따라 통계적으로 저임금 근로자의 일자리가 줄어든 것처럼 보일 뿐”이라며 워싱턴대의 연구 결과를 반박했다.
○ 결국 중요한 건 경제의 ‘기초체력’
하지만 ‘헝가리의 실패’에도 유럽 주요국은 일제히 최저임금을 올리는 분위기다. 영국은 2015년부터 25세 이상 근로자를 상대로 생활임금제(최저임금보다 더 높은 수준의 임금을 보장)를 도입했다. 최저임금을 노사자율에 맡겨온 독일은 2015년부터 법정 최저임금을 새로 도입했다.
주목해야 할 점은 최저임금 인상에 나선 미국이나 영국 독일 등은 최근 몇 년간 정부가 재정을 적극 풀어 유례없는 경기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시애틀은 383개 도시지역 중 1인당 지역총생산이 6번째로 높은 곳이다. 영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2012년 이후 프랑스와 독일을 뛰어넘었다. 최저임금을 올릴 ‘기초체력’을 갖추고 있는 이 국가들과 달리 한국은 각종 경제 지표가 악화일로를 걷는 데다 자영업자의 기반이 취약해 최저임금 인상의 충격이 크다.
더욱이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여전히 후진국 수준이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한국 중소제조업의 2000∼2017년 최저임금은 4배 늘어났지만 노동생산성은 1.83배 증가하는 데 그쳤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은 산업생태계가 악화된 상황이라 최저임금을 올린다고 해 내수가 바로 활성화되기 어렵다”며 “각국의 최저임금 인상이 산업생태계와 어떻게 맞물려 돌아가는지를 잘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