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건축의 백미 ‘무량수전’ 영주 부석사 가보니
한국 전통 건축의 백미이자 부석사의 법당인 무량수전(오른쪽) 등 소백산맥을 감싸고 있는 부석사의 모습. 무량수전 앞에는 석등(국보 제17호)과 건물 내부에 위치한 소조아미타여래좌상(국보 제45호) 등 다양한 문화재가 함께 어우려져 있다. 영주=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몇날 며칠을 두고 비만 내리는 지루한 장마 끝에 홀연히 먹구름이 가시면서 밝은 햇살이 쨍쨍 내리쬐는 듯한 절은 영주 부석사다.”(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2’에서)
부석사(浮石寺)에 대한 이런 묘사처럼 장마 끝에 맑게 갠 날씨를 선사한 16일. 경북 영주시 소백산국립공원에 위치한 부석사에도 따가운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웬만한 유명한 산사 입구처럼 피서 인파로 북적거리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산세가 험하고, 계곡이 없는 이곳은 취락시설이 거의 없어 조용한 경관을 자랑한다. 고요한 산사(山寺)를 즐기고 싶은 이들에게 안성맞춤이다.
부석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사찰 정중앙에 위치한 범종루와 안양루 등 일렬로 배치된 누각들. 함께 동행한 문화재위원인 명법 스님은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이 겹치는 험준한 지형에 위치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누각 밑의 계단을 지나야 상층부로 올라갈 수 있는 ‘누하(樓下)진입’ 구조를 채택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찰 아래쪽에선 한 눈에 파악하기 힘들었던 부석사의 전경이 계단을 하나씩 오를 때마다 조금씩 얼굴을 내비친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경북 영주시 부석사 경내 모습.
법당인 무량수전(無量壽殿·국보 제18호) 앞에 위치한 안양루에 올라서면 봉황산을 포함한 소백산맥의 수려함이 눈앞에 펼쳐진다. 선선한 바람이 끊임없이 불어와 30도가 넘는 무더운 날씨에도 기분 좋은 시원함을 선물한다. 안양루 벽면에는 이곳을 방문하거나 시주한 이들의 이름이 적힌 편액이 걸려 있다.
“그림 같은 강산은 동남으로 벌려있고(江山似畵東南列)/ 천지는 부평 같아 밤낮으로 떠있구나(天地如萍日夜浮).” 조선 후기 방랑 시인 김삿갓(본명 김병연·1807~1863)이 남긴 수려한 시 한수를 마주하면 청량한 여유가 젖은 땀을 식혀준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경북 영주시 부석사 선묘각
안양루 뒤편에는 부석사의 자랑이자 한국 건축의 백미 무량수전이 있다. 극락전, 대웅전 등의 이름을 가진 절은 많지만 ‘무량수전’이라는 이름을 가진 법당은 오직 부석사뿐이다. 무량수는 아미타 부처를 뜻하는데, 시간과 공간이 무한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특징은 한 눈에 봐도 알 수 있는 배흘림기둥. 가운데가 볼록하게 보이는 시선의 왜곡 현상을 활용해 배 부분을 더 두껍게 강조하는 엔타시스 기법을 사용했다. 그리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에서도 볼 수 있는 기법으로 당나라를 거쳐 우리나라까지 유입됐다. 고대 그리스의 건축 기법을 동아시아 사찰에서 만난다는 점에서 시공간이 무한하다는 무량수전의 의미가 더 깊게 다가온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경북 영주시 부석사 부석.
무량수전 옆에는 부석사 창건설화와 관련된 큼지막한 너럭바위가 있다.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625~702)와 그를 흠모한 중국의 선묘낭자의 애틋한 로맨스가 전해진다. 선묘낭자는 당나라로 유학 온 의상대사와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깨닫고, 연인 대신 용으로 변신해 신라로 귀국하는 스님을 수호했다고 한다. 이후 사찰을 짓기 위해 토착세력과 갈등을 겪던 의상대사를 돕기 위해 뜬 바위(부석)로 변해 반대 세력을 무찔러 주기도 했다. 실제로 바위의 밑 부분을 살펴보면 마치 떠있는 것처럼 가파르게 꺾여 있다.
세계문화우산에 등재된 경북 영주시 부석사 조사당
부석사에는 의상대사를 기억하는 공간이 많은데 대표적으로 무량수전에서 100m 가량 더 높은 곳에 있는 조사당(祖師堂·국보 제19호)을 꼽을 수 있다. 조사당 앞에는 선비화(禪扉花)라고 불리는 골담초 한 그루가 피어나고 있다. 의상대사의 지팡이를 꽂은 후 지금껏 조금씩 자라고 있다는 재밌는 설화가 녹아 있다.
16일 불교문화재연구소 연구진이 부석사 장경각 내부에서 인경(印經) 작업을 하고 있다. 영주=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의상대사는 한국 불교의 화엄종을 집대성한 인물이기도 하다. 안양루 아래에 위치한 ‘장경각’에서 고려 때 화엄사상의 내용을 적어 놓은 ‘화엄경판’ 500여 판이 보관 중이다. 마침 이날 불교문화재연구소 연구진이 경판을 인쇄하는 인경(印經)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먹 냄새 가득한 곳에서 경판을 인쇄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고려시대 불교 수행자의 흔적을 얼핏 발견할 수 있었다.
부석사의 숨은 매력 하나 더. 사찰 동쪽 끝에 위치한 식당은 꼭 들리길 권한다. 미리 예약한 방문객에 한해 허용되는 식당은 소백산맥을 바라보며 식사를 할 수 있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건강한 음식과 풍경을 함께 즐기고 있으면 저절로 몸과 마음이 모두 홀가분해진다.
영주=유원모 기자onemo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