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1월 퇴임한 박보영 전 대법관이 최근 전남 여수시 법원 판사로 근무할 수 있는지 법원행정처에 타진했다고 한다. 여수시 법원 판사는 소송가액 2000만 원 미만의 소액사건을 다루는 시·군 판사다. 지난해 원로법관제가 도입되면서 서울고법원장과 사법연수원장 등 고위 법관 5명이 이미 시·군 법원에 내려가 소액사건 재판을 맡고 있다. 대법관 출신은 처음이다. 박 전 대법관의 요구가 받아들여진다면 전관예우 관행을 깨는 은퇴 법관의 새로운 선례가 될 수 있다.
대법관은 퇴임 후 2년간 개업이 금지된다. 그러나 2년 후에는 대부분 대형 로펌의 고문으로 가거나 법률사무소를 열어 막대한 수임료를 챙긴다. 대한변호사협회는 대법관 출신만은 평생 변호사 개업을 하지 말 것을 요구해왔다. 대법관들이 먼저 전관예우 관행을 깨는 선례를 보여서 퇴직 판사들의 모범이 되라는 요구에는 윤리적 정당성이 있다.
법원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소송 당사자로부터 1심이 부실하다는 불만을 사 1심에서 종결되지 않는 사건이 많다는 것이다. 지방법원 배석판사를 갓 벗어난 경륜이 적은 법관보다는 대법관이나 법원장을 지낸 고위 법관들이 1심, 그중에서도 서민들이 주로 다투는 소액사건을 맡는다면 소송 당사자들의 승복 가능성을 높여 사법 신뢰를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