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한국의 산사를 가다] <2> 건축의 백미 영주 부석사
《“몇날 며칠을 두고 비만 내리는 지루한 장마 끝에 홀연히 먹구름이 가시면서 밝은 햇살이 쨍쨍 내리쬐는 듯한 절은 영주 부석사다.”(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2’ 중에서)
장마 끝에 맑게 갠 날씨를 선사한 16일. 경북 영주시 소백산국립공원에 있는 부석사(浮石寺)에도 따가운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여느 유명한 산사 입구처럼 피서를 온 인파로 북적거리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산세가 험하고, 계곡이 없는 이곳은 취락시설이 거의 없어 조용한 경관을 자랑한다. 고요한 산사(山寺)를 즐기고 싶은 이들에게 안성맞춤인 곳이다. 》
한국 전통 건축의 백미이자 부석사의 법당인 무량수전(오른쪽) 등 소백산맥을 감싸고 있는 부석사 모습. 무량수전 앞에는 석등(국보 제17호)과 건물 내부에 위치한 소조아미타여래좌상(국보 제45호) 등 다양한 문화재가 함께 어우러져 있다. 영주=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부석사의 법당인 무량수전(無量壽殿·국보 제18호) 앞에 위치한 안양루에 올라서면 봉황산을 포함한 소백산맥의 수려함이 눈앞에 펼쳐진다. 선선한 바람이 끊임없이 불어와 30도가 넘는 무더운 날씨임에도 기분 좋은 시원함을 선물한다. 안양루의 벽면에는 이곳을 방문하거나 시주한 이들의 이름이 적힌 편액이 걸려 있다.
“그림 같은 강산은 동남으로 벌려있고, 천지는 부평 같아 밤낮으로 떠있구나”
16일 불교문화재연구소 연구진이 부석사 장경각 내부에서 인경 작업을 하고 있다. 영주=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무량수전 바로 옆에는 부석사의 창건설화와 관련된 큼지막한 너럭바위가 있다. 이 바위는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625∼702)와 그를 흠모한 중국의 선묘낭자의 애틋한 로맨스를 간직하고 있다. 선묘낭자는 당나라로 유학 온 의상대사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깨닫고, 대신 용이 돼 신라로 귀국하는 스님을 수호한다. 이후 사찰을 짓기 위해 토착세력과 갈등을 겪던 의상대사를 돕기 위해 뜬 바위(부석)로 변해 반대 세력을 무찔러 준 것이다. 실제로 바위의 밑부분은 떠있는 것처럼 가파르게 꺾여 있다.
의상대사는 한국 불교의 화엄종을 집대성한 인물이기도 하다. 안양루 아래쪽에 위치한 ‘장경각’은 고려 시대 때 화엄사상의 내용을 적어 놓은 ‘화엄경판’ 500여 판을 보관 중이다. 마침 이날 불교문화재연구소 연구진이 경판을 인쇄하는 인경(印經)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먹 냄새 가득한 곳에서 경판을 인쇄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고려시대 불교 수행자의 흔적이 내 눈앞에 얼핏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부석사의 숨은 매력은 사찰 동쪽 끝에 위치한 식당이다. 미리 예약한 일부 방문객에 한해 허용되는 식당은 소백산맥을 바라보며 식사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건강한 음식과 풍경을 함께 즐기고 있으면 저절로 몸과 마음이 모두 홀가분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