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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박형준]양대 항공사가 필요한 것, 혁신의 ‘엔진’ 조직문화

입력 | 2018-07-20 03:00:00


박형준 산업1부 차장

핀란드의 국민기업 노키아는 2007년에 최고 전성기를 맞았다. 당시 연간 매출액은 510억 유로. 한화로 치면 약 67조 원이다. 150년 역사상 최대 매출이었다. 노키아는 삼성전자 모토로라 등 2∼5위 경쟁사 4곳의 판매대수를 모두 합한 것과 맞먹는 압도적인 판매량을 자랑했다.

이듬해 애플은 아이폰을 세상에 선보였다. 손가락으로 화면을 건드리는 것만으로도 조작할 수 있고, 모바일 인터넷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었다. ‘요술 방망이’가 따로 없었다. 그 후 휴대전화 시장은 급속도로 스마트폰 중심으로 바뀌었다. 변화에 느렸던 노키아는 결국 2014년 4월 마이크로소프트(MS)에 인수됐다.

마크 엡스타인 미국 라이스대 경영대학원 교수 등은 ‘혁신 패러독스’라는 책을 통해 노키아의 몰락 원인을 ‘점진적 혁신’에 안주한 것으로 봤다. 기존 제품을 꾸준하게 개선했지만 시장의 판도를 바꾸는 획기적인 제품(파괴적 혁신)을 내놓지 못했다. 결국 애플의 파괴적 혁신 한 방에 노키아는 무너졌다.

어떻게 해야 파괴적 혁신을 할 수 있을까. 엡스타인 교수는 그 원동력을 ‘조직문화’에서 찾았다. 진취적이고 혁신을 북돋우는 조직문화가 파괴적 혁신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최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사태를 보면서 조직문화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절감했다. 대한항공 오너 일가족은 2014년 ‘땅콩 회항’에 이어 올해 ‘물컵 갑질’, 자택 경비원 등에 대한 폭언과 폭행, 대학 부정 편입학 등으로 물의를 빚고 있다. 현재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부부와 3자녀 모두 수사를 받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기내식 대란’으로 구설에 올랐지만 점차 박삼구 회장의 갑질에 대한 폭로전으로 치닫고 있다. 최근 승무원 교육생들이 박 회장을 위해 노래와 율동을 연습하는 영상이 공개되기도 했다.

한국의 오너 경영은 빠르고 과감한 의사결정으로 대기업의 성장을 이끌었다. 하지만 오너를 신처럼 떠받드는 제왕적 조직문화는 기업을 병들게 한다. 두 항공사 직원들은 “직장이 어디냐”는 물음에 자부심을 느끼며 답할 수 있을까.

항공업은 엄청난 자본이 필요하고, 이미 공룡기업들이 자리 잡고 있는 ‘레드오션’이다. 후발 주자가 성공하기는 지극히 어렵다. 하지만 1967년 설립된 사우스웨스트항공은 불가능을 가능케 했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은 1972년부터 지난해까지 한 해도 빠짐없이 흑자를 냈다. 돈만 잘 버는 게 아니다.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젊은이들이 일하고 싶어 하는 기업 조사에서 꾸준히 톱10에 들고 있다. 경영 전문가들은 사우스웨스트항공의 핵심 경쟁력으로 조직문화를 꼽는다.

창업자인 허브 켈러허는 ‘직원이 행복하지 않은데, 어떻게 직원이 고객을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가졌고, 그 생각을 조직문화로 정착시켰다. 그는 직원 이름과 개인사를 많이 기억한다. 생일파티를 열어주고 직접 축하 노래를 부른다. 심지어 “고객이 잘못된 요구를 하면 응하지 말고, ‘다른 항공편을 이용하라’고 말하라”고 지시한다. 이 같은 조직문화가 우수한 인재를 끌어들이고, 훌륭한 고객 서비스로 이어지는 것이다.

위기는 곧 기회다. 한국을 대표하는 양대 항공사가 이번 기회를 계기로 조직문화를 재정립했으면 한다.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나서 직원들과 논의하며 비전을 정하는 게 첫 순서다. 비전은 구체적이고, 구성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킬수록 좋다. 저렴한 생필품을 전문적으로 유통하는 일본의 다이소가 ‘소비자물가지수를 1% 낮추는 기업’을 비전으로 정한 것처럼.
 
박형준 산업1부 차장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