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어디 가서 보수라고 말하면 나이 든 이는 꼰대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대학가에서는 동성애보다 보수 ‘커밍아웃’이 더 힘들다는 말까지 나온다. 결국 많은 ‘샤이 보수’들은 침묵하고 만다. 현대 보수주의 사상의 원조인 에드먼드 버크의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을 번역한 이태숙 경희대 교수는 서문에서 “자유주의의 기반이 부족한 한국에서 보수의 강세는 기이한 현상이었다”고 썼다. 한국 보수는 공산주의와 북한에 대한 비판으로 지탱했으나 바로 그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보수가 그동안 이만큼이나마 유지된 것은 ‘아스팔트 보수’에 힘입고 있지만 반대로 보수가 지금 이 꼴이 된 것도 아무 데나 울긋불긋한 등산복을 입고 다니며 태극기를 흔드는 그 아스팔트 보수들의 책임이 적지 않다. 무슨 주장을 하더라도 연륜에 걸맞은 말쑥한 차림으로 절제된 주장을 했다면 더 설득력이 있었을 텐데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들면 지갑은 열고 입은 닫으라는 말이 있다. 이제 젊은 보수들이 말하게 해줬으면 좋겠다. 그래야 보수도 세대교체가 이뤄질 수 있다. 젊은이들이 세상 물정 모르고 역사를 모른다고 탓하지 말라. 그들은 마블스튜디오 영화의 진행 속도를 따라가고 스마트폰으로 상상할 수 없는 많은 것을 하는 세대다. 어느 세대에서건 젊은이를 탓하는 쪽이 졌다. 젊은이들은 충분히 똑똑해서 내버려두면 그들도 문제를 인식하고 스스로 말한다.
▷주변을 잘 살펴보면 실은 그런 젊은이들이 없지 않다. ‘서울대 트루스 포럼’에서 시작해 현재 전국 60개 대학의 ‘트루스 얼라이언스’로 확대된 모임에는 700명의 재학생과 졸업생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대한민국 건국과 산업화의 가치를 인정하고 한미동맹을 통한 북한의 해방을 추구한다”고 주장한다. 보수가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보수의 박제화(剝製化)다. 같은 주장이라도 젊은 보수들이 하니 박제화된 주장에 확 생기가 도는 듯하다. 이들이 공산주의와 북한에 대한 반대를 넘어 평화와 평등의 이념까지 포섭하는, 더 큰 자유주의를 보여준다면 보수도 다시 댄디해질 수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